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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신문 옭아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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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특정신문의 시장점유율을 깎아내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언론악법이 곧 상정될 모양이다. 여당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냈다는 언론개혁법안 치고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소위 신문개혁을 주장하는 224개나 되는 시민.노동.사회단체의 요구를 담아내며 그들을 무마하기 위한 흔적까지 엿볼 수 있다. 집권여당이 각종 압력집단에 휘둘리는 모습 같아 안타깝다. 그나마 위헌의 소지가 확실한 신문사 사주의 지분제한 항목이 빠진 것은 다행이다.

기존의 정기간행물법을 대폭 수정한 '신문 등의 기능보장 및 독자의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30% 이상이거나 3개사가 60% 이상일 경우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된다. 국내에선 시장 점유율이 30% 이상 되는 신문사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이번 개혁 법안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소위 '빅3'로 불리는 중앙.동아.조선 등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60%를 넘기 때문에 개혁법안이 이들 특정신문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60%가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큰 데다, 앞으로 정부가 신문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 간 논란도 클 수밖에 없다. 당장 시장 점유율의 계산방식 등을 놓고 견해가 크게 엇갈린다.

이번 언론개혁법안은 현행 법률과도 상충된다. 공정거래법 제4조 1항과 2항에 따르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한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50 이상"이거나 "세 개 이하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75 이상"인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만 놓고 봐도 3개사 신문의 시장점유율은 70%를 넘지 않기 때문에 법률적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질 게 분명하다. 이 공정거래법의 취지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그리고 기타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을 방지하고 가격담합 등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한 사업자 간에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촉진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번 언론개혁법안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규정하는 항목에서 정확한 근거나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얼핏 봐도 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특정신문을 옭아매려는 의도로 비춰진다.

여당은 신문의 공공성이 다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보다 더욱 중요하기에 공정거래법 이상으로 "시장지배적 여건을 강화해도 문제가 없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에서도 일간지 시장의 질서를 바꿔보려는 여당의 의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신문개혁법안을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을 겨냥한 악법"으로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반시장적 정권 연장법"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언론과 출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사례는 '내용 규제'와 '비내용 규제'로 나뉜다. 이번 언론개혁법안은 특정 신문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에 중립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그뿐만 아니라 분명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내포하는 언론자유에 대한 '비내용 규제'로 구분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는 공적자금으로 신문발전기금을 마련하고, 한국언론재단을 한국언론진흥원으로 개편하며, 공동판매망 전문법인도 설립할 예정이다. 모르긴 해도 신문발전을 위한 이들 유관단체의 책임자들은 집권세력과 코드를 맞춰 신문개혁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차지할 게 분명하다. 이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는 사이에 국민의 혈세는 "신문을 공정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당의 애매모호한 논리에 따라 흔적도 없이 새나갈 전망이다.

심재철 고려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