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미움은 묻어버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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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전 한국건강가족실천운동본부 황준식 총재가 세밑 안부를 나누던 끝에 한번 읽어보라며 자신이 쓴 글을 보내주었다.

증오심이라는 제목 밑에 작은 글씨로 단 '여보게 서로 미워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라는 부제가 마음을 끌어당겼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바로 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황총재는 가족들이 즐거워야 할 아침식탁에서조차 서로 비수(匕首)같은 말을 주고 받아 '지옥같은 가정' 을 자초하고 있다면서 가족이 그러니 학교.직장 나아가 나라와 민족 사이의 으르렁거림이 없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증오심이란 남이 나에게 한 처사에 대해 못마땅하다고 생각해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의 본심이나 힘을 헤아릴 수 없어 덤벼들지도, 잊거나 용서해서 이를 떨쳐버리지도 못한 채 집요하게 마음에 품고 있어 생기는 고통을 바탕에 깔고 있는 심리상태, 감정입니다.

…중략…우리네 부모와 자식, 부부간의 관계는 서구에 비해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까닭에 끈끈한 정을 가지고 한 몸이 되기를 원하?과정에서 응석을 부리게 되지요. 그래서 서양사람보다 뭔가 알지 못할 기대가 크고, 관계가 손상될 때 기대가 큰 만큼 좌절도 크게 느끼고 미워합니다.

그러면서도 관계가 끊어질까 두려워하는 게 바로 우리네 '미움' 의 특징입니다.

인도의 캘커타에서 죽음을 앞둔 극빈자들을 돌봐 준 마더 테레사는 생전에 그녀를 도우러 오겠다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가 보고자하는 눈만 있다면 세계 도처에서 캘커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캘커타 거리는 그 자체로 모든 사람을 어떤 문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대는 아마도 어느날 캘커타로 여행을 오고 싶어할지도 모르지요. 이렇게 우리는 먼 곳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가 더 쉬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내 곁에 있는 이들을 한결같이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또는 업신여기는 이들에게야 어떠하겠습니까□"

연말이다. 묵은 증오심은 2000년과 함께 묻어버리자. 그리고 이 한가지만 기억하자. 고달픈 세상도 서로 연민으로 끌어안으면 낙원이라는 사실을.

홍은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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