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또 민생 발목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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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야가 새해예산안을 합의처리키로한 20일 오전 국회 예산안 조정소위 회의실.개회시간은 1시간이나 지났지만 민주당위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한나라당위원들만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나오연 위원=민주당은 우리 안(약8조원 삭감)에 대한 대안제시도 없냐.협상을 하긴 하겠다는거냐.

▶박종근 위원=(민주당은)오히려 예산을 늘리겠다고 한다.

같은 시간 국회 운영위원장실.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와 장재식(張在植)예결위원장,정세균(丁世均)간사가 전윤철(田允喆)기획예산처장관과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삭감안에 대해 "협상이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 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야당의 요구는 합의기한 내 처리해 주지 않으려는 정치공세" 라고 비난했고 張위원장은 "21일 본회의도 어렵겠다" 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여야 위원들은 이날 자정을 넘겨가며 계수조정작업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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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선 19일 오전 예결위 회의실. 한나라당이 자신의 삭감안을 민주당 위원들에게 제시했다. 경상비.특수활동비 등 성질.기능별 항목으로 분류한 내역이었다. 민주당 위원들은 펄쩍 뛰었다.

"부처.사업별로 예산편성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런 기능별 삭감안을 내는 거냐" (정세균 간사)고 반박했다. 자민련 정우택(鄭宇澤)위원도 "아예 예산을 다시 짜자는 얘기" 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위원은 "성질.기능별로 예산을 봐야 실질적 심의가 된다. 정부가 못한 것을 국회가 개혁하자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반발이 워낙 완강해 한나라당은 결국 이날 밤 늦게 사업별 삭감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때도 민주당은 조정안 자체를 내놓지 않았다. 정세균 간사가 구두(口頭)로만 "농어가 부채경감을 위해 6천6백억원, 실업대책 예산으로 1천억~2천억원이 필요하고, 사회간접자본(SOC)투자, 중소기업 대책, 소외계층 지원 등에도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고 '증액' 주장만 폈을 뿐이다.

한나라당 이재창(李在昌)위원은 민주당측에 "증액분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거냐" 고 따졌지만 민주당은 구체적 내역에는 입을 닫았다.

한나라당 이한구(李漢久)간사는 "민주당이 우리가 '민생을 외면한다' 는 여론의 압력을 받아 삭감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 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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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20일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예산 삭감규모를 둘러싼 설전을 벌였다.

민주당 의총에서 장재식 예결위원장은 "한나라당이 10%를 깎자고 한다" 며 "예결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지만 설득이 안 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정균환 총무는 "야당의 상식 이하의 주장에 대해선 참기 어렵다" 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의총에서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은 "예산심의를 총괄하는 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이 공석인 바람에 예산심의 기능이 마비됐다" 며 "여당은 사실상 국정포기 상태" 라고 공세를 폈다.

정창화(鄭昌和)총무는 "여당이 국회파행을 각오하고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 며 '날치기' 가능성을 경계했다.

고정애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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