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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가족 타임캡슐' 만들기 유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한해가 간다. 들뜬 새 천년의 팡파르가 사방에 울려퍼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한해를 기다린다.

언제나 내년은 올해와 다르리라고 기대하지만 연말이 되면 또 다시 아쉬움만 가득하다.

잇따른 송년회 때문에 흥청거리기 쉬운 이때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한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설계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또 서로 아쉬웠던 일들을 돌아보고 즐거웠던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 연말 특선영화를 보면서 새해를 맞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1김유경(35.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씨 집에서는 올 연말을 맞아 '우리 가족 타임캡슐' 을 만들기로 했다. 새 천년 첫해를 보내면서 소중했던 추억들을 담아두는 작은 상자를 마련한 것이다.

남편.아이들과 함께 3년 후에 꺼내보고 싶은 2000년의 추억 서린 물건들을 준비했다.

네살배기 딸 윤선이는 제일 좋아하는 피카추 인형과 인형의 집을 2000년의 물건으로 준비했고, 의젓한 초등학교 2학년 아들 원석이는 좋아하는 게임 CD와 소설책 해리포터 시리즈를 꺼내왔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한해 동안 즐겨 듣던 브람스 교향곡 CD와 지난 10월에 담근 과일주를 타임캡슐에 넣기로 했다.

비만에 좋다는 배로 담근 술인데 3년 후엔 아주 적당하게 익어 맛이 좋을 거라며 기대에 차 있다.

김씨가 준비한 것은 일년간 꾸준히 쓴 다이어리와 건이가 생일날 엄마에게 준 카드. 하얀 도화지에 연필로 '축 생신' 이라고 쓴 허술한 카드지만 엄마에겐 감격스럽기 그지없던 선물이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무심코 지나쳤던 물건들인데 이렇게 모아놓으니 한해 동안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름방학에 서해안 놀러가서 모닥불 피워놓고 캠프파이어 했던 거 정말 재미 있었어" 라는 원석이의 말에 "가을에 과수원에서 사과 따면서 놀았던 것도 좋았던 걸" 하는 윤선이.

각자 즐거웠던 한때를 떠올리며 '타임캡슐' 안에 물건을 넣는다. 3년 후엔 우리가 얼마나 변해 있을까를 상상하면서.

김씨 가족들이 올 연말에 계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행사는 소외된 이웃 돌아보기다. 얼마전부터는 보육원에 가져가기 위해 안 입는 겨울옷 정리도 시작했다.

어려운 처지의 한 아이를 정해 필요할 때마다 돕는 결연후원도 시작할 예정.

"어려운 사람들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에서 도와주고 싶지만 선뜻 그러질 못했어요. 마음만 있을 뿐 표현을 하진 못했죠. 올해엔 꼭 가 볼 예정이에요" 라는 김씨는 자신의 아이들이 이웃 돕기를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 새해를 맞을 준비에 바쁜 또 한 가족. 이수진(34.서울 마포구 도화동)씨 집에서는 연말 행사인 2001년 달력 만들기가 한창이다. 보통 달력이 아닌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족달력이다.

코르크 판을 이용해 달력을 만들고 여기에 가족들의 사진을 오려 붙여 기억해야 할 날짜에 꽂아 놓으면 쳐다보기에 즐겁고 편리한 가족 달력이 된다.

이씨 가족이 기다리는 두 번째 행사는 새해 계획 세우기. 모두 새해 첫날 발표할 2001년 계획을 구상 중이다.

김씨가 미리 들어본 가족들의 새해계획 한 토막. 7살 난 아들 명진이는 내년엔 태권도 검은띠를 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또 너무 싫은 김치를 잘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나. 남편은 가족과 함께 배추랑 감자를 심으며 흙내를 맡을 수 있는 주말농장을 만들고 말겠다며 벼르고 있다.

김씨 자신은 결혼 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김치담그기를 시도할 예정이다.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는 2000년 연말.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깊어지는 가족 사랑은 2001년을 맞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사진〓김성룡, 글〓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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