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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파월 독트린'과 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조지 W 부시가 거의 국제정치의 색맹(色盲)이라면 국무장관 지명자 콜린 파월은 차기 대통령의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에 충분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빌딩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난 파월이 합참의장을 끝으로 군문을 떠날 때까지 걸어온 길은 지금 생각하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 되기 위한 연수과정 같다. 그는 레이건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걸프전쟁의 영웅이다.

파월은 초급장교시절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은 미군 병사가 자신의 품 안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미국이 참전하는 전쟁의 정당성에 관해서 깊이 생각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베트남에 갔지만 신념의 토대가 거짓말과 자기 기만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

부시 정부 대외정책의 기조가 될 '파월 독트린' 의 원형은 이미 베트남에서 싹튼 것으로 보인다.

파월 독트린은 미국의 군사력은 전략적 국가이익이 확실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월의 뇌리에는 한국도 깊이 각인돼 있다. 1970년대 중령으로 동두천에서 1년간 복무하면서 5만4천명의 미군이 희생된 한국전쟁을 생각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 여덟살이던 그는 "나는 한국전쟁의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고 말한다.

83년 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의 보좌관이던 그는 와인버거와 조지 슐츠 국무장관이 2백69명의 승객이 희생된 이 엄청난 사건을 놓고 정책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을 봤다.

와인버거는 마드리드에서 열기로 된 미.소 외무장관회담을 취소하라고 주장했고, 슐츠는 소련이 한국의 여객기를 격추했다고 미국의 국가이익이 걸린 협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반대했다.

이념과 현실주의의 충돌이었다. 결국 슐츠는 소련 외무장관 안드레이 그로미코를 만났다. 여기서 미래의 국무장관은 한반도 주변의 민감한 냉전상황과 정부내의 복잡한 힘의 관계를 공부했다.

그가 부시 정부에서 클린턴 정부에 걸쳐 합참의장을 지낸 것도 부시가 대권(Mandate) 없는 약체 대통령이고 의회의 세력분포가 민주당과 공화당간에 거의 반반으로 갈린 현실에서 거친 정치의 파도를 헤쳐나가는데는 유용한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파월은 국무장관 임명을 수락하는 연설에서 해외주둔 미군의 규모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선언해 많은 억측을 낳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주한미군을 줄이고 주일미군을 축으로 중국견제 전략의 틀을 짤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속단 같다. 한반도 긴장완화가 주한미군 감축의 이유가 된다면 주일미군의 규모를 지금대로 유지할 명분은 어디서 찾는가.

북한이 변하고 한반도의 긴장이 근본적으로 완화됐는지도 확실치 않다.

우리의 초미의 관심 대상은 부시 정부의 중국정책과 대북정책이다.

중국정책에서 부시와 파월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부시는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 경쟁자라고 말하고, 파월은 중국이 "아직은"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고 말해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대북정책의 시금석은 미사일문제일 것 같다. 부시 정부는 산.군 복합체의 이해가 직결된 동북아시아 전역미사일방위(TMD)와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개발의 명분을 잃지 않는 선에서 북한과 미사일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다. 협상을 서두르지도 않고, 클린턴 정부같이 북한의 '응석' 을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부시 정부의 안보분야 요직에 국방부 계열의 사람들이 많이 기용될 전망 또한 불안요인의 하나다.

파월의 온건한 현실주의가 그들을 얼마나 견제할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부시 정부에 들어갈 기라성 같은 아시아 전문가들이 벌일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활용할 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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