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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실속 없는 '네탓 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그럴 줄은 알았지만 연말이랍시고 또 한탄과 자조(自嘲)가 가득 담긴 얘기들의 연속이다.

우울한 소식과 전문가들의 촌평이 그저 하루하루 놀라지 않고 살고픈 백성들을 볼모로 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안읽어도 좋을 글과 몰라도 될 지저분한 정보는 서민들의 짜증만 더해 준다.

풀어야 할 문제들이 난삽해 질수록 전문가들의 제언(提言)은 공허하게 들리고 대부분 "모두가 네탓" 이라는 주장들이 때로는 밉다.

서민은 정부를 탓하고 학자들은 기업을 책망한다. 여당은 야당을 욕하고 야당은 집권당과 대통령을 싸잡아 공박하기 일쑤다. 그리고 언론은 그런 얘기들을 확대재생산해 일반 가정의 안방에 전달한다.

너와 내가 함께 저질러 놓은 문제들은 애초부터 '네탓보다 내탓' 이란 이해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해법을 찾기 어려운데도 남을 먼저 탓하는 막힌 길을 택한다.

국민정서에 이미 자리잡은 '남 탓하기' 버릇은 외교문제라고 다를 바 없다.

북한 사정 빤히 알고 시작했으면서도 필요이상으로 서두르고 있는 자신들의 숨은 계산은 외면한 채 미적거리는 북한만을 탓한다.

노근리, 매향리, 주한미군의 한강오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한.미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다루는 자세 역시 차분한 맛이 모자란다.

우리의 준비부족이나 논리결핍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고 상대방의 오만을 앞세운 출구 없는 선동(煽動)이 백성들을 격하게 만든다.

교과서 개정과 재일(在日)동포 참정권은 일본을 방문하는 우리 고관(高官)이나 정치인들의 무용담 거리다.

그때마다 곧 해결될 듯 소개되는 얘기들이 이내 도루묵이 되고마는 것은 모두 일본의 옹졸함 탓인가.

아니면 상대방이 숙제를 게을리하고 있으니 우리는 목청만 높이면 된다는 안이한 자존심도 이유의 하나인가.

남 말하기 즐겨하고 걸핏하면 남 탓하는 버릇이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것은 비극(悲劇)이다. 그 뿌리를 파헤쳐 가뜩이나 우울한 모두를 절망시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세계 속에 이만큼 발전한 조국에 보람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백성 하나하나가 되도록 애써야 마땅하다.

갈 길 바쁜 우리에겐 한해 전에 이미 다가왔던 21세기가 일본에는 이제서야 오고 있다. 서점에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논하는 서적들이 즐비하다.

각종 민관(民官)위원회가 국가전략을 제시하고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모임에서 만들어낸 정책 알리기가 일본의 신세기 준비다.

하지만 일본인 자신들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주제의 서적들은 일년 내내 서가를 채우며 국민들의 자성(自省)을 촉구하고 있다.

흡사한 현상이 언젠가 유행처럼 우리 사회도 스쳐갔지만 과연 누가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절실한 대안을 내놓았는지 기억이 감감하다.

습관적으로 남 탓하기 좋아하는 분위기와 주변 잘되는 꼴 못참는 사회에선 잘난 인물이나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통령에 삶의 상당부분을 의지하고 사는 우리네 습성 탓인지 귀에 익숙해진 "대통령이 나서라" 는 주문도 내탓을 회피하고 책임을 네탓으로 돌리는 조건반사적 구호라는 측면이 있다.

아무튼 새해의 나라살림을 어둡게 보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경제적 여력 없이 대북정책이나 외교전선에 힘이 실릴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개인의 삶 마냥 국가운영 역시 사정이 어려울 때는 매사에 기대감을 낮추고 놓인 처지와 쓸 수 있는 힘을 헤아리는 주제파악에 나서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나 안살림이 어려울 때마다 흔히 경험했던 것처럼 바깥을 비난하고 실체 없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구태(舊態)를 되풀이해선 곤란하다.

실속 따져보지 않고 불지르는 반미(反美)구호나 정지된 시간 속에 허우적거리는 반일(反日)감정 등은 가뜩이나 힘겨운 백성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

내년 이맘 때는 스스로에 대한 주제파악에서 출발해 해방될 시점을 넘긴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과, 유효기간 지나버린 일본을 향한 자존심에서 좀더 자유로워진 우리를 만나고 싶다.

도쿄에서=길정우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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