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 대통령 재도전 클린턴이 장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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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민주당 앨 고어 부통령이 4년 뒤 대통령에 재도전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빌 클린턴 현 대통령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민주당 지도부의 말을 인용해 17일 보도했다.

그렇다고 8년간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이 다시 출마하는 것은 아니다. 1951년 비준된 미국 헌법의 수정조항 제22조는 '누구도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다' 고 정해 놓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 연임을 한 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법을 고친 것이다.

클린턴이 고어의 앞길을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어이없게도 여전히 높은 그의 인기 때문. 월스트리트저널과 NBC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임기말을 맞은 클린턴에 대한 지지율은 66%다. 이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로널드 레이건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보다 높은 수치다.

이쯤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하나같이 클린턴 곁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요체가 '사람과 돈' 이라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고어보다 클린턴과 함께 있어야 기부금과 청중이 모이는 마당에 민주당원들이 클린턴에게 기우는 걸 막을 재간이 없다.

게다가 클린턴은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없고 고어는 차기를 노리고 있다. 따라서 2004년에 대통령직을 노리는 민주당 차기주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고어를 매장하려 할 게 분명하다.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이자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조셉 바이든은 "고어가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앞으로 4년 뒤 지명을 다시 얻기가 쉽지 않을 것" 이라며 고어를 폄하했다.

고어 캠프의 책임자였던 토니 코엘로 변호사조차 "민주당의 리더는 고어가 아니라 클린턴인 게 사실" 이라며 "내년에 당장 뉴저지 주지사 선거가 치러지는데 아마 후보들이 클린턴의 지원연설을 받으려 안달이 날 것" 이라고 말했다.

클린턴도 퇴임 뒤 민주당의 사실상 리더가 되는 것을 즐기는 눈치다.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클린턴이 기부금도 모금하고 우리를 위해 뛰겠다고 약속했다.그는 우리에게 힘을 줄 것" 이라고 말했다.

클린턴과 고어는 역사상 보기드물게 호흡이 잘 맞았던 정.부통령이었다. 그러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고 고어는 선거운동 기간 중 클린턴의 도움을 거부했다. 고어의 참모들은 "클린턴과 거리를 두라" 고 조언했다.

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고어는 또 다시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너무 잘 나가는 사람 곁에 있어 오히려 초라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클린턴과 고어의 우정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관심거리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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