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미국 51번째州' 제안에 박수 보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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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조지 오웰이 작품 '1984년' 에서 선보였던 신조어 'new speak' 는 아직도 낡지 않은 어휘로 남아 있습니다.

새 밀레니엄에도 의연히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적 어휘라고 봅니다. 'new speak' 란 독재자 빅 브라더(大兄)가 기존 영어(old speak)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공식언어를 말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단적 사고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려는 제도적 폭력의 장치이죠. 현재 우리 사회에도 공식언어가 분명 존재합니다.

단 강제적 폭력이 아니고, '자기 검열' 형태로 각자 마음 속에 똬리 틀고 있는 것이죠. 특히 신문.방송 같은 대중매체가 그럴 수밖에 없는데, 사회적 논의의 수위에 대한 암묵적인 틀이 있고, 대부분은 그 안에서 고만고만하고 순치(馴致)된, 그저 얌전한 발언을 서로간에 주고받는 것이죠. 사회가 허용하는 통념 혹은 이데올로기란 여전히 위력적이고, 특히 대중사회 속에서는 허위의식, 자기만족 형태로 신념화됩니다.

건강한 논의를 위해 이 구조를 때론 깨줄 필요가 있고, 기자 역시 '눈에 안보이는 뉴 스피크' 를 허물고 싶어 근질근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참에 최근 문학동네에서 터진 '어퍼컷 한 방' 에 속이 다 후련해졌습니다.

평론가 조형준이 계간지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기고한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자는 겸손한 제안' (본지 12월 14일자 14면) 말입니다.

허황한 우리 사회 병리증후군(미국 콤플렉스)에 대한 '불온한 똥침' 의 풍자가 바로 그 글이었다고 기자는 판단을 합니다.

그 평론을 '영어를 국어로 하자' 는 일본 메이지 시대 모리(森有禮)의 발언과 동일시할 '거룩한 민족주의자' 는 없을 것입니다.

이 참에 선우휘의 단편소설이 생각났습니다. 하도 오래 전 기억이라 서울대 국문학과 김윤식 교수에게 확인했더니 애초 1965년 6월호 '세대' 에 발표됐었고, 제목은 '좌절의 복사(複寫)' 라고 일러주시더라고요. 대표작 '불꽃' 에 못미치는 이 작품이 지금도 생생한 것은 사회적 금기의 선을 넘기로 작심한 폭탄선언 때문입니다.

선우휘는 작중 화자(話者)의 입을 빌려 한국인이야말로 2천년 전 이스라엘처럼 민족 전체가 풍비박산나는 엑소더스를 겪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현재의 한심한 시민의식과 정치 수준이란 통상적인 방식으론 도저히 치유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민족 전체가 해외로 흩어져 된통 고생을 해야 정신을 차릴 것이고, 그 기간은 수천년 이상이어야 한다고 독설을 쏟아냅니다.

신문기자로서는 보수 논객에 속했던 선우휘의 이런 의외의 발언을 못난 자학(自虐)이라고 욕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가늠컨대 그건 픽션의 공간을 빌려 공식언어를 무시해본 모종의 실험이었을 겁니다. 왜 선우휘와 조형준의 우국충정이 남보다 덜하겠습니까□ 목불인견의 사회행태에 질렸던 것이겠지요. 조형준은 문제의 앞글에서 '강호제현들의 의견' 을 묻더라고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제 의견 한자락을 밝힐까 합니다.

그의 견해에 뜨거운 옹호와 연대를 표명한다고 말입니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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