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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예술의 용광로 뉴욕 브루클린 음악아카데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난 주말 뉴욕의 브루클린 음악아카데미(BAM:Brooklyn Academy of Music)는 여러 장르를 아우른 12개국 현대음악가들의 합동공연을 끝으로 올해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 의 막을 내렸다.

올해로 18회인 이 페스티벌은 '신조류' 라는 제목에서 보이듯, 전위적.실험적 공연작품을 엄선해 선보이는 세계적인 무대. 지난 10월 개막공연은 미니멀리즘 경향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현대음악가 필립 그래스의 '교향곡 5번' 초연이 장식했는데, 객석에 불을 밝힌 채 합창곡의 가사가 적힌 팸플릿을 넘기며 음악을 듣는 방식부터가 색달랐다.

11월초 공연한 대만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의 '방랑자의 노래' 역시 올해의 화제작. 수십 가마니 분량의 쌀알을 동원한 독특한 무대효과로 현지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페스티벌을 관람한 문화기획자 이승욱씨는 "전위문화의 산실이라는 뉴욕에서도 이처럼 대규모로 전위예술 무대를 기획하는 곳은 드물다" 고 감탄했다.

하지만 BAM이 흥미로운 것은 공연의 전위적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갱영화의 무대로 곧잘 등장하는 데서도 짐작하듯, BAM이 자리한 브루클린 지역은 뉴욕의 중심이 맨해턴으로 옮겨가면서 쇠락한 변두리. 1861년 개관한 BAM 역시 화재 이후 세워진 현재 건물의 역사가 1백년 가까이 되는 낡은 공연장이었다.

새 바람은 1967년 하비 리히텐슈타인이 예술감독 겸 대표로 취임하면서 불기 시작했다.

99년 퇴임할 때까지 그는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 등 실험적 공연축제를 연달아 기획, 맨해턴의 고급 리무진 행렬과 새로운 문화에 굶주린 젊은 관객을 브루클린으로 이끌어냈다.

'아카데미' 라는 이름 때문에 음악학교로 오해하던 뉴욕의 관객은 로버트 윌슨의 '해변의 아인슈타인' , 피터 브룩의 9시간짜리 서사극 '마하바라타' 등 20세기 전위연극의 교과서같은 작품을 보면서 이 무대를 점차 'BAM(뱀)' 이라는 애칭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BAM의 9백석 규모 소극장은 리히텐슈타인의 퇴임과 함께 '하비 씨어터' 로 명명됐다. 2천석 규모의 오페라극장이 자리한 본관에서 5분 거리인 이 곳은 80년대 중반 피터 브룩이 '마하바라타' 공연장으로 찾아낸 곳. 흉가처럼 버려져 있던 영화관을, 헐어빠진 내벽은 그대로 둔 채 객석만을 개조해 공연장 전체가 시대극의 무대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본관의 소극장은 4개관의 복합영화관 '로즈시네마' 로 개조, 독립영화 개봉상영 등 인근 영화매니아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낡은 무대를 '새로운' 예술의 전당으로 바꿔나간 BAM의 변화는 주변에 다른 공연장을 유치, 예술촌을 만드려는 'BAM 지역개발협회' 의 노력과 함께 지금도 진행중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주도로 'BAM지역개발협회' 가 결성돼 주변을 공연장.연습장이 빼곡한 예술촌으로 만들 계획을 추진중인 것. 뉴욕문화관광의 필수코스가 맨해턴에서 브루클린다리 너머로 이어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뉴욕=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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