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의 가족영화 '그린치'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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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약간 에두른 얘기지만 영화 '그린치' (16일 개봉)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모두 우리 현실과 관련된 것들이다.

첫째, 연말의 극장가다. '그린치' '치킨 런' '포켓몬' 등 가족 영화.애니메이션이 줄줄이 관객에게 손짓하나 아쉽게도 국산은 없다.

부모와 아이가 손을 잡고 극장을 찾는 가족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까닭일까. 그보단 어떤 성인영화보다 세밀한 준비가 필요한 가족영화를 만들 만큼 우리 영화환경이 성숙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둘째, 경기 한파로 유난히 체감 추위가 더한 올 겨울의 이웃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이 겨울은 얼마나 길게 느껴질까. 영화 '그린치' 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편견 없는 사랑을 전하고 있다.

특별히 새로운 메시지가 없는 '그린치' 에 대한 사설이 길어진 것은 그만큼 영화 속 환상과 현실의 우리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린치' 는 잘 빚어진 동화 같은 영화다. 사실 원작 자체가 동화다. 시어도 수스 가이젤(닥터 수스)의 베스트셀러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을까' (1957년)를 영상으로 옮겼다.

'코쿤' (SF) '스플래시' (코미디) '분노의 역류' (액션) 등 여러 장르에서 흥행 감각을 발휘했던 론 하워드 감독은 이번에도 보기 좋은 팬터지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선 개봉 4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총수익 2억달러를 돌파했다.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다. 온몸이 녹색 털로 뒤덮여 마을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괴물 형상의 그린치(짐 캐리)가 마음씨 고운 소녀 신디의 도움으로 세상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고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낸다는 줄거리다. 자기와 다른 것을 혐오하는 어른들의 편견을 꼬집고 있다. 동화만큼 간결한 구조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르도 없지 않은가.

가장 큰 매력은 뛰어난 특수분장과 절묘한 세트다. 흰 눈으로 뒤덮힌 마을과 형형색색의 인물들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애니메이션 못지 않은 영상을 아름답게 구현해 아이들이 영화 속에 푹 빠질 만하다.

'그린치' 는 또 짐 캐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두텁게 칠한 분장 때문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지만 그의 빼어난 코미디 연기는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노출된다.

과하다 싶을 만큼 요란한 몸짓이 때론 거슬리나 그만의 활달한 개성으로 영화의 생동감을 살려냈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그린치' 는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을 생각하게 한다.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듯 심술꾸러기 악동 그린치는 때묻지 않은 동심에 감화돼 꽁꽁 얼어붙은 가슴을 녹인다.

일반인에 비해 크기가 절반도 안되는 그린치의 심장이 나중에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그린치' 는 결국 성인을 위한 동화다. 색다른 분장과 화려한 영상에 마음을 빼앗길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잊기 쉬운 순수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공을 들인 영화의 감동을 좀더 깊게 하는 세밀한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른의 시각에선 흐름 자체가 단조롭기 때문이다.

박정호 기자

모든 갈등과 반목이 일순에 사라지는 동화의 코드를 제대로 살렸다. 동화는 역시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크리스마스의 참뜻은 선물이 아니라 마음…. 뻔한 얘기를 완성도 높게 소화하는 할리우드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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