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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절세미인(節稅美人)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어느덧 점심시간, 샐러리맨의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뭘 먹지? 술집 안주 중엔 '아무거나' 란 것도 있던데, 점심메뉴엔 없나. 누구랑 가지…. "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서면 또 한번 망설임이 시작된다. 카드로 할까, 현찰로 할까. 비록 순간이지만 이익함수와 체면함수를 감안한 복잡방정식을 푸느라 머리가 뜨거워진다.

"1만원 이상이면 복권추첨 대상이라지. 20대 여성이 1억원을 탔다던데. 당첨 확률이 0.05%면 1만명 중 5명. 그래, 긁고 보자. 한데 세명 밥값으로 1만5천원이면 카드 긋기엔 액수가 좀 적잖아. 동료들이나 주인이 좀스럽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

식당주인도 고민은 있다. "카드결제 수수료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뭐 있나. 그렇다고 카드를 안 받을 수도 없고. 종합소득세 문제도 곤란하고…. "

하여 계산대에서 카드 결제기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잘 안보이는 탁자 아래나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숨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면 수건이라도 한장 올려놓는다.

순간, 샐러리맨과 식당주인 사이에 날카로운 전선이 형성된다. "카드를 내고 말테다!" "이래도 카드로 계산할래?" 물론 승자는 그때그때 다르다.

카드결제기가 먹통이 되거나 주인이 동료를 보며 "혹시, 만오천원 없어요?" 라고 물어보면 샐러리맨은 패자가 되고 만다.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샐러리맨은 단언하건대 아무 주유소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선 휘발유가 ℓ당 얼마인지 가격표부터 살핀다. 요즘은 1천2백60원대에서 1천3백20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ℓ당 60원 차이라도 50ℓ면 3천원이다.

세차 서비스가 있는지, 선물은 무엇인지도 중요하다. 선물은 화장지.잡지.쌀.신문.생수 등 다양하다. 요즘은 적립식 할인카드까지 있어 어느 회사 기름을 넣어야 할지도 망설여진다.

주유소를 택했다고 주판놓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름값을 치르고 나면 주유소 직원이 묻는다. "영수증이 필요하세요?" 본격 고민은 이제부터다.

"영수증이라. 필요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발급하기 싫다는 얘기겠지. 세금을 생각해야 하니까. 달라고 하면 혹시 화장지나 뭐 선물 같은 걸 안주는 것 아냐? 사실 영수증은 필요없지만, 안받자니 탈세를 방조하는 것 같고 - . 이거 시민정신 테스트야 뭐야. "

그래서 어정쩡하게 대답한다. "알아서 하세요. " 영수증과 함께 건네받은 휴대용 화장지를 보며 후회도 해본다. "필요없다고 했더라면 혹시 값나가는 선물을 줬을까. "

바야흐로 연말 정산철. 얼마나 원천징수를 당했는지도 모르는 샐러리맨들은 혹시나 몇푼이라도 환급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세금 계산서도 찾아보고, 서류도 챙겨본다.

그렇지만 샐러리맨들이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일본에 '탈세 1.4.6' 이란 말이 있다. 과세탈루 소득이 근로자는 10%, 사업자는 40%, 전문직은 60%란 것이다. 우리나라는 1.5.7쯤 될지도 모른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의 말이다.

전국의 자영 사업자는 3백40만명인데, 이 가운데 2백10만명은 과세미달자란다. 게다가 매출액 3천6백만원 이상인 소비자 상대 사업자 중 32.5%는 아직도 신용카드를 거부한다. 결국 유리지갑 샐러리맨이 이들 사업자의 세금을 대신 내주는 셈이다.

6백30만 샐러리맨들이여, 우리 모두 '절세미인(節稅美人)' 이 되자. 체면은 다른 데서 찾고 영수증을 꼬박꼬박 챙기자. 카드가 있다면 카드로 계산하자.

박종권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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