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DJ 국정쇄신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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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노벨상을 받으면서도 심기가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귀국하면 즉시 국정쇄신을 단행키로 약속했는데 집안사정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인 민주당은 친권(親權)-반권(反權)이니, 양갑(兩甲)이니 하며 다투고, 동교동계 퇴진론을 놓고 싸움박질이다.

*** 집권세력 교통정리 해야

일부에서는 이를 단순한 당내 세력다툼으로 보지만 민주당의 구성성분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민주당이 잡다한 세력을 포용한 이질성 탓이며 기본적으로는 金대통령 자신의 다중성(多重性) 탓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당료들은 그들의 당대표인 서영훈(徐英勳)씨를 노골적으로 "껍데기" 라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徐대표 본인이나 당내 재야출신들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에게 민주당의 중심은 동교동계일 수 없고 그들이 지지해온 '김대중적 노선' 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군부독재에 저항하고 집권할 때까지는 서로 힘을 모으고 역량을 합칠 수 있었던 이 노선이 내부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는 데 있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오랜 야당인사들은 '정치인 김대중' 의 성공만을 바라는 정치적 충복이다. 이들에겐 이념은 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재야세력들에겐 이념성이 중요하다. 그들의 성향은 천차만별이다. 일부는 단순한 군부독재 반대세력이고, 일부는 진보적이고 개중엔 급진파도 섞여 있다.

그리고 김대중세력의 가장 큰 정치적 발판은 말할 것도 없이 강력한 지역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金대통령에게 호남의 한(恨)을 풀어야 할 정치적 부담을 지우고 있다.

이런 金대통령의 다면성(多面性)은 그를 대통령에 오르도록 밀어준 추진체였지만 그의 어느 한쪽 면(面)을 보고 그를 추종해온 세력으로서는 그가 다면적 요소를 나타내면 낼수록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의 당내 갈등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로 이런 잡다한 요소들의 내부충돌이며 지금까지 민주당 정부가 노출하고 있는 정책혼선의 본질이다.

재야진보세력들은 급진적 개혁을 주창한다. 그러나 동교동계에게는 30년 고생한 야당 동지들을 보살펴야 하고 권력에서 소외된 호남의 한도 풀어야 한다.

그러니 한쪽에서는 개혁을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이권으로 이용하고, 앞에서는 공정을 약속하면서 뒤에서는 무리한 인사편중정책이 감행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노사정위가 사실상 노(勞)의 전투성향을 더 부추긴다고 못마땅해한다. 학력의 하향평준화라는 비판에도 특권세력을 키우면 안된다는 평등주의적 교육정책이 평준화를 강행하려 한다.

급진시민단체들은 반미감정을 고취시키는데 정부의 대북정책은 저자세 일변도다. 이런 소수개혁과 위장개혁이 뒤범벅이 돼 다수의 온건하고 보수적인 시민들을 불안케 하고 분노케 한다.

때문에 金대통령이 단행해야 할 국정쇄신은 단순히 동교동계의 진퇴나 친권(親權) - 반권(反權)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집권세력을 어떻게 정리해서 어떤 방향으로 국가를 끌고 갈 것이냐의 문제가 돼야 한다.

*** 소수노선 영합해선 안돼

金대통령은 최근 "10%의 지지만을 받더라도 개혁을 추진하겠다" 고 말하고 있다.

만약 이런 말들이 야당 시절의 저항'적 비판'논리나 평등주의적 소수개혁의 강행을 의미한다면 큰일이다.

만약 또 좌파적 소수 진보세력 중심의 개혁으로 나아간다면 의약분업사태와 같은, 엉터리 교육개혁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평등주의적 강제로 시장질서들이 왜곡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의 비주류적.저항적 소수 개혁노선은 노벨 평화상으로 보상받았다. 이제부터 그는 대통령으로서 다수 개혁의 본류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가신 중심 민주당으로, 지금의 눈치보기 관료들만으로 위기상황을 쇄신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지금의 혼란스런 상황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한다면 처방이 없진 않을 것이다.

동교동계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특정지역이 손해를 보더라도 부패를 끊어내고 인사편중을 시정하는 데서부터 손대야 할 것이며 결코 소수 진보노선에 영합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다중적 집단 모두에 구미를 맞추려 하다 보면 국정혼선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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