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큰 싸움 작은 싸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요즘이야 캄보디아 이주여성들이 많아 낯설지 않지만 그때는 캄보디아 하면 킬링필드를 떠올리던 때였다. 크메르 루주의 폴 포트 정권이 저지른 200만 명의 집단 학살. 이상적인 농업 국가를 세운다는 명분 아래 지식인과 아이들을 ‘혁명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던 나라. 그 나라 군인의 눈동자는 ‘닥터 지바고’ 오마 샤리프의 촉촉하고 깊은 그 눈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총 대신 내 카메라를 들어 줬던 순박한 그런 남자들이 과연 집단 학살에 가담을 했을까. 아랫것들은 지가 뭔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 위의 것 명령만을 따랐던 건 아니었을까. 전쟁이란 그런 것인가.

내전이든지 세계대전이든지 아님 테러이든지. 전쟁을 하는 이유는 뭘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것은 싸움이요, 나라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것은 전쟁인가. 애들끼리는 뺏긴 물건이나 무시당한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 혹은 남이 가진 물건이 탐이 나서 싸우던데 어른들이 하는 전쟁의 이유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애들 싸움도 들어보면 그럴듯한 양측의 절절한 이유가 있듯이, 전쟁마다 그럴듯한 명분이야 다 있겠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너무도 지겹고 힘겹고 두렵고 무섭다.

지난 연말 여객기 테러 미수 사건 이후 미 공항 보안 검색이 강화되어 몇몇 항공 여행객에 대해서는 100% 신체검사를 한단다. 미국에서 알몸(전신) 투시기를 사용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알카에다는 그 알몸 투시기를 비켜갈 폭발물 은닉 연습을 하고 있단다. 신발에 폭발물을 감췄다고 신발 속을 보더니만 속옷에 감추니까 팬티 속을 보겠단다. 나중엔 모조리 벗고 사우나 가운만 입고서 비행기 타게 될까 겁난다.

보는 시각과 처한 입장에 따라 9·11 테러의 원인도 제각각이더라. 이슬람 메카에 세운 이스라엘 때문이라고도 하고, 강대국에 유린당한 몇몇 중동의 빈곤이 그 뿌리였다는 말도 있고, 두 문명의 충돌이라고도 한다. ‘작은 놈은 죽자 사자 목숨 걸고 덤비고, 큰 놈은 더 큰 희생을 각오하라며 큰 힘으로 위협하고’.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반복되고 있는 ‘테러와 대테러와의 전쟁’. 애들 싸움이야 어른이 말리겠지만 어른 남자들이 벌이고 있는 큰 싸움은 대체 누가 말릴 수 있으려나. 난 그저 하던 대로 늘어나는 황혼 이혼이나 걱정하고, 저출산이나 고민하며, ‘성폭력과의 전쟁’ 같은 작은 싸움이나 하며 살련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