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정크본드의 마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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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80년대 미국에서 ‘정크본드의 마술사’로 불리며 각광받았던 마이클 밀켄은 부하직원을 혹독하게 다루기로 유명했다.

명문 버클리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증권회사 드렉셀 번햄 램버트에 입사(70년)한 그는 중역으로 승진한 78년에 자기 팀을 이끌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주,본격적으로 정크본드(신용도가 낮아 원리금을 못받을 위험이 큰 대신 수익율이 높은 회사채)에 손대기 시작했다.

밀켄의 사무실은 뉴욕증시의 활동시간에 맞추어 새벽 4시30분부터 저녁 8시30분까지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다(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시차는 3시간).

하도 스트레스가 심해서 어떤 직원은 하루에 4갑의 담배를 피웠고,전화도중 자기도 모르게 전화선을 이로 물어 끊은 것도 모르고 “전화가 갑자기 끊겼다”며 고함치는 직원도 있었다.

어쨌든 밀켄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신용등급이 형편없어 회사채 발행은 힘들지만 장래가 유망한 회사들을 골라 투자자와 연결하는 새로운 수법으로 ‘월가의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저그런 증권사였던 드렉셀도 덩달아 초대형 업체로 성장했다.밀켄의 연봉은 한때 5억5천만달러까지 치솟았다.

85년11월 미 연방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밀켄은 추락하기 시작했다.그는 89년 사기 등 98개 죄목으로 기소됐다.내부자거래에다 투자자와 고객을 속이고 부당이익을 얻은 혐의였다.

90년에 그는 몇몇 혐의에 대해 유죄를 시인하고 검찰로부터 6억5천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재판에서 연방법원은 10년형을 선고했다.이 와중에 드렉셀 번햄 램버트사는 파산했다.

밀켄은 22개월간 복역후 증권업에서 손을 뗀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됐다.천당과 지옥을 오갔기 때문인지 출옥 당시 그는 대머리로 변해 있었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즈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밀켄이 클린턴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인 자신의 오랜 친구를 움직여 복권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벌써 미국내에는 ‘정치자금의 댓가로 금융사기범을 복권시킬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반론이 무성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투자자를 울린 금융사기범에 대한 미국사회의 응징은 이처럼 철저하고 집요하다.비자금 조성이나 정치권 로비 의혹은 애초부터 없다.수사검사의 정치적 야망 정도는 거론되지만 우리처럼 검찰수사 자체가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는 일도 없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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