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에 앞장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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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리스 등 유럽의 재정 위기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그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정 위기에 처한 나라들로부터 외화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부도위험을 뜻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의 가산율(프리미엄)이 치솟으면서, 그 여파가 신흥국에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럽발 재정 위기가 신흥시장으로 확산될 경우 국내 외환시장과 금융회사의 외화유동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불거진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1조6000억원가량 빠져나갔고, 우리나라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에 붙는 CDS프리미엄이 연중 최고치로 치솟았다.

일부 언론에선 유럽의 재정 위기를 빗대 한국의 재정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규모나 재정 상태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가 다소 빠르다는 점이 걱정스럽지만, 이 또한 정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뿐더러 앞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한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현재 한국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위협하는 불안 요소는 부채규모나 재정건전성이 아니다. 그보다는 해외발 위기가 다국적 금융회사들을 경유해 무차별적으로 한국시장에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다국적 금융회사들이 신흥시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바람에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큰 홍역을 치렀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에 별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외화유동성이 급감하면서 국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도 멀리 떨어진 유럽의 재정 위기로 유럽계 은행들이 대거 자금 회수에 나설 경우 우리나라는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 당국은 외화유동성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국내 금융회사들의 외화 대출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 426억 달러에 달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와 27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감안할 때 과거와 같은 외화유동성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외부의 충격에 국내 시장을 속절없이 내맡길 것이냐다. 정부는 지난해 신흥국의 외화유동성 문제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정식의제로 제기하고 국제공조를 통한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었다. 이번 그리스발 재정 위기는 신흥국의 외화유동성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금융안전망의 필요성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 지금은 한국의 국가부채를 부풀려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킬 게 아니라 해외발 위기를 차단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외화유동성 위기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줄여나가면서,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구축에 앞장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