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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구직자 크게 늘자 실업률 5%로 껑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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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오히려 실업을 키웠다. 정책 당국자가 들으면 펄쩍 뛸 얘기지만 실제로 그런 통계가 나왔다.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1월 실업자는 121만6000명으로 1년 전보다 36만8000명이나 늘었다.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2001년 3월(112만9000명) 이후 8년10개월 만이다. 또 2000년 2월(122만3000명) 이후 9년11개월 만에 가장 많다. 그동안 3%대에서 큰 변화 없이 게걸음을 치던 실업률은 갑자기 5.0%로 치솟았다. 1년 전보다 무려 1.4%포인트나 급등했다.

이것만 보면 고용시장에 뭔가 큰일이 터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1월에 일자리는 5000개가 늘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줄어들던 취업자 수가 플러스로 반전됐다.

왜 엇갈리는 신호가 나올까.

통계청 은순현 고용통계과장은 “국가의 고용정책에 따라 희망근로사업이나 청년 인턴처럼 정부가 직접 만들어낸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구직활동에 참여하는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월 8일부터 22일까지 각 지방자치단체가 10만 명을 모집한 희망근로사업에는 지원자가 42만 명이나 몰렸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희망근로사업 이외에도 정부의 일자리 사업 대부분이 1~2월에 집중적으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근로사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지 않는 노령층이 많이 참여한다. 60세 이상의 실업률이 1년 전보다 7.4%포인트 뛴 8.8%를 기록한 것도 ‘희망근로 효과’로 볼 수 있다.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이들이 나랏돈으로 만든 일자리에 관심을 보이면서 경제활동에 나섰기 때문에 실업률이 뛴 것이다. 고용통계는 조사 대상이 되는 일주일간 돈 되는 일을 하지 않았고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해야 실업자로 분류한다.

결국 비경제활동인구에서 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로 넘어온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1월 통계를 보면 15세 이상 인구는 1년 전보다 52만 명 늘었다. 이 가운데 37만 명이 경제활동인구 증가분이었다.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난 것은 좋은 소식이다. 일할 의사로 충만한 이가 많아졌으니, 경제도 그만큼 더 활력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인천·대구 등 일부 지역의 실업률이 갑자기 2%포인트 안팎으로 급등해 6%대의 실업률을 기록한 것도 희망근로사업 등 정부 일자리사업과 관련이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지자체가 시행하는 희망근로사업(10만 명분)의 28%가 서울(1만6000명)·대구(6900명)·인천(5000명)에 몰려 있다.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면서 일자리를 찾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은순현 과장은 “취업자와 실업자가 동시에 늘어나는 것은 경기회복기에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청년 실업은 여전히 문제였다.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3%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올랐다. 중졸 이하 학력자의 고용대란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1월에 중졸 이하 실업자는 19만2000명이 늘었고, 실업률은 4.1%포인트 오른 7.1%였다.

고용통계의 이상 급등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구직할 뜻이 없다가 경제활동인구로 나온 이들을 고용시장이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면 높은 실업률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희망근로사업 등 정부가 임시변통으로 만들어낸 일자리에서 일했던 이들이 나중에 계속 고용시장에 남아 있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연초부터 급등한 실업률은 정부 정책으로 인한 ‘불규칙 바운드’인 셈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만들어낸 일자리가 임시직이고 고용의 질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통계 왜곡을 막으려면 희망근로 같은 정부 일자리를 서서히 줄이고 사업 시행 시기도 중간에 끊어지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희망근로사업은 풀베기 등과 같은 외부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올해 희망근로사업도 설 직후부터 시작된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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