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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이성태 총재님, 두 번 남았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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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얼추 10년은 됐을 거다. 서울 강남 대치동의 중대형 A아파트값이 5억원쯤 하던 시절. 그가 불쑥 돈 얘기를 꺼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그때 그는 한은 조사담당 부총재보였다. “우리가 평생 사는 데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집 한 채, 자동차, 은행 예금, 두 아이의 교육비…. 머릿속에 계산이 나올 때쯤 이 총재의 답이 먼저 떨어졌다.

“30억원이 넘으면 그때부터 돈은 권력이 돼요. 사람을 부리는 데 쓰일 뿐이지. 작게는 가정부나 기사, 경호원에서 크게는 수만 명의 종업원까지.”

그는 이런 ‘돈 철학’을 나랏돈에까지 확산했다.

“나랏돈도 너무 풀리면 안 좋아. 물가가 오르지. 물가가 오르면 돈을 사람 부리는 데 쓰는 이들은 괜찮지만, 나머지는 더 힘들어져. 사람들 욕심도 커지지. 지금은 30억원이지만, 10년 뒤엔 50억원으로도 모자란다고 할걸.”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대치동 A아파트 값은 크게 올라 20억원이 넘는다. 욕심껏 살려면 50억원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올 판이다. 이런 앞날을 예측했던 그는 한은 총재가 됐고, 4년의 임기도 거의 끝나 두 달 뒤 퇴임을 앞두고 있다.

그 4년 동안 그는 그러나 물가와 집값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의 소신이 바뀐 건 아니었다. 물가 안정에 너무 매달린다고 ‘인플레 파이터’로 불릴 정도였으니. 현실이 안 받쳐준 게 컸다. 결정적일 때 엇나갔다. 2008년 8월 금리를 0.25% 올렸지만 다음 달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그는 다섯 달 동안 3.25%나 금리를 낮춰야 했다. 사상 유례없는 속도였다. “한 달 뒤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시장의 비난이 빗발쳤다. 이 총재에겐 뼈아팠을 것이다. 자괴감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불가항력이랄 수 있다. 애초에 금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풀린 돈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타이밍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 경제의 한 치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다.

각종 숫자부터 뒤죽박죽이다. 우선 돈이 도는 속도가 1년 전만큼 빨라졌다. 장·단기 금리차이는 9년 만에 최대다. 1월 생활물가는 전달보다 3.8%가 올랐다. 은행 연체율은 2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지난해 집값도 소폭이지만 1년 전보다 올랐다. 금리를 올리라는 신호들이다. 게다가 이웃나라 중국은 지난해 푼 돈 때문에 후유증이 만만찮다. 상하이·하이난 등 곳곳의 집값이 1년 새 두 배 넘게 뛰었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건재한 우리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반대쪽 신호들도 만만찮다. 투자는 지지부진이고 실업률은 좀체 줄지 않는다. 금호그룹 사태도 부담이다. 나라 밖 사정도 안 좋다. 그리스 등 남유럽 나라들의 국가 부도 위기로 금융시장이 흔들린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게 숙수(熟手)의 감(感)과 경험이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 저널은 경제 예측을 잘한 ‘미국의 5대 이코노미스트’ 중 한 명으로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를 선정했다. 손 교수는 비결로 “수십 년간 쌓은 경험과 감”을 꼽았다.

이 총재의 ‘감’은 출구 쪽이다. 지난해 그는 걸핏하면 ‘출구’ 쪽을 바라봤다. “현재의 기준 금리 2%는 엄청나게 낮은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달까지도 금리를 올리지 못했다. 고비 때마다 대통령까지 나서 “출구전략은 이르다”며 압박한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자칫 ‘감’이 틀렸을 때 쏟아질 비난도 두려웠을 것이다.

이 총재는 퇴임 전까지 두 번의 금융통화위원회를 더 주재한다. 그중 한 번이 내일이다. 시장은 이 총재의 ‘경험과 감’을 듣고 싶어 한다. 이미 시중 금리는 5%선을 넘볼 만큼 올라 있다. 후임에 미뤄서도, 애매모호한 말 속에 숨어서도 안 된다. 그랬다간 훗날 큰 버블의 주역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앨런 그린스펀이 퇴임 후 그랬던 것처럼.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