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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비스업 위상 낮아 자본·인재 유입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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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서비스 산업 선진화 국제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5일 중앙일보와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서비스업이 단순히 제조업을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업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왼쪽부터 후카오 교지 교수, 김광기 선임기자, 허브 메이스 교수, 질 호르위츠 교수, 구본진 재정업무관리관, 크리스 올리치 교수, 차문중 박사.[김도훈 인턴기자]

▶사회=경제가 선진화하는 데 왜 서비스 부문의 발전이 중요한가. 서비스업의 경쟁력은 어떻게 판가름 나는가.

▶허브 메이스=서비스업에 제조업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조업의 성공 여부는 시장에서 얼마나 잘 파느냐에 달렸고, 그러려면 소비자에게 제품을 잘 서비스하는 게 중요해졌다. 결국 제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도 서비스업의 발달은 꼭 필요하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연구개발(R&D)이란 혁신 엔진이 요구된다. 하지만 서비스업에서는 소비자에게 얼마나 효율적이고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따진다.

▶사회=한국은 서비스 산업이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그 이유로 정부 규제와 영세성, 기득권 집단의 현실 안주 등이 문제로 거론되는데 어떻게 보나.

▶메이스=서비스 산업의 각 영역에 진입하는 데 장벽이 많은 것 같다. 반면 꼭 필요한 곳엔 적절한 규제가 없어 혼란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또 서비스업이 낙후돼 있어 좋은 인재와 자본이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삼성과 현대 같은 강력한 브랜드가 많지만, 서비스업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는 대한항공 정도인 것 같다.

▶질 호르위츠=한국에서는 의료 영역에 영리법인을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뜨거운 것으로 안다.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 분야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회=일본의 경험이 궁금하다. 일본도 제조업에선 성공했지만 서비스업이 낙후된 것으로 안다. 일본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후카오 교지=일본은 정보기술(IT)과 조직 구조조정에 별로 투자하지 않는다. 또 서비스 부문에 비정규직이 많은데 기업들이 이들에게 교육·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 인적자본 축적이 미진했다. 대기업들이 조직 내부에 법률·컨설팅·디자인 등의 부서를 직접 거느리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개별 기업의 보안 유지 등에는 좋지만 경제 전체적으로 관련 서비스 산업이 독립적으로 클 수 있는 길이 막혔다. 한국처럼 모든 정부 부처가 각각 자신의 서비스 섹터를 갖고 있는 점도 진입규제를 존속시키는 문제를 초래했다.

▶사회=최근 한국에선 아이폰 쇼크가 크다. 휴대전화 만드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 안에 서비스를 녹여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한국이 IT 강국으로 평가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서비스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까.

▶메이스=애플은 높은 기술력과 서비스의 조화로 제조업에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혁신은 서로 다른 사업영역의 융합을 계속 찾아가는 것인데 IT 기술이 그 열쇠가 될 수 있다. 한국도 제조업의 강점을 서비스와 묶어 산업화한다면 좋은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차문중=소프트웨어와 응용프로그램이라는 서비스가 스마트폰이라는 제품 생산을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비스는 단순히 제조업을 보완하거나 융합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조업을 이끄는 역할도 한다.

▶구본진=재미있는 예가 있다. 국내 한 기업이 휴대전화로 하루 종일 혈압을 체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의료행위로 규정돼 병원이 아니면 서비스할 수가 없었다. 좋은 기술이 사장될 위험에 처했다. 규제가 없으면 다양한 산업 간 융합이 일어나고, 거기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사회=한국에서 병원의 영리법인 설립 문제가 난관에 부닥쳐 있는데, 선진국들의 경험을 얘기해 달라.

▶메이스=영리 의료법인을 허용하면 좋은 의사들이 이곳으로 몰려 돈 없는 사람들이 찾는 비영리병원은 서비스의 질이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큰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는 기우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가장 서비스 좋은 병원의 랭킹을 보면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는 비영리병원이나 대학병원들이 대거 상위에 올라있다. 걱정하는 의료 양극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호르위츠=한국은 영리 의료 분야의 잠재력이 큰 나라다. 의료 부문이 가격과 소비자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환자가 스스로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잘 아는 경우 영리병원이 발달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비영리법인을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운용하는 것이 좋다.

▶사회=미국이 의료 부문을 민간 보험에 맡겨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는 전문가도 있는데 정말 그런가.

▶호르위츠=미국 의료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공공 부문이나 민간의 어느 한쪽에 의료 서비스를 맡겨서 생긴 게 아니다. 의료 부문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고, 각 부분을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비효율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회=중국 시장이 무섭게 크고 있다. 한국이 중국을 향한 배후 서비스 기지로 성장할 가능성은 없는가.

▶후카오=한국은 디자인이나 물류 산업 등의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중국의 배후 기지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구본진=중국 배후 기지뿐 아니라 우리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해 직접 중국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부터 외국에서 환자를 유치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의료관광이 활성화하고 있다.

▶사회=마지막으로 한국의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조언해 달라.

▶크리스 올리치=한국은 지난 20년간 규제에서 개방으로 적절히 이동해 왔고 본다. 특히 지난 2년간 금융 부문에서 정부가 손을 많이 떼는 것 같았다. 규제 완화와 더불어 외국인들이 살기 편한 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메이스= 한국은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다. 그런 이미지를 계속 쌓아가야 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서비스업을 향해 공부하고 도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정리=최현철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참석자

허브 메이스 프랑스 에섹대 교수

질 호르위츠 미국 미시간대 교수

크리스 올리치 호주 캔버라대 교수

후카오 교지 일본 히토쓰바시대 교수

구본진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

차문중 KDI 연구위원

▶사회=김광기 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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