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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거꾸로 가는 공공부문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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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정감사에서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이나 감독기관에서 내려보내는 낙하산 인사와 공기업 직원들의 과도한 임금 인상, 그리고 퇴직자에 대한 특혜를 비롯한 방만한 경영은 경기침체 속에서 어렵게 하루를 보내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다.

주주가 국민이고 그 대리인 역할을 하는 감독기관은 공기업의 감독을 게을리하는데 이는 감독기관과 공기업 간 먹이사슬 관계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투명경영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감독은 게을리한 채 퇴직공무원의 일자리 해소용으로 공기업을 활용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와 정치권, 낙하산 경영진, 그리고 직원 간의 끈끈한 유착관계 속에서 공기업 직원들은 주인 없는 회사에서 하는 일도 별로 없이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공공부문에도 민간에 상응하는 구조조정을 시도해 대대적으로 인력을 줄이는 등 공기업 구조조정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서는 공기업 민영화를 포함한 공공부문 개혁은 물건너간 듯하다.

우리 경제의 침체원인 중 하나는 불확실성의 증대라고 할 수 있다.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던 기업인들이 투자를 기피한다면 이는 투자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운영 방식을 볼 때 경제행위의 성과가 시장원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배분될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어떤 기업인도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기대한다면 시장지향적 정책의지를 시장에서 표명해야 한다. 현 정부는 말로는 시장친화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정부의 시장지향성을 가장 쉽게 검증할 수 있는 공공부문을 보면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정부는 다른 경제주체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시장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정부가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사안은 과연 공기업들이 설립목적에 충실한지를 점검하는 일이다. 일부 공기업은 여건 변화로 존재가치를 상실했다. 또 일부 공기업은 설립 목적을 이미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 존속을 위해 목적에도 맞지 않는 신규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요성이 없는 공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설립목적을 다한 공기업에는 일몰제를 적용해 일정 기간 후 소멸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기업의 경우 대졸자 초임으로 1인당 국민소득의 두배가량인 약 2000만원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 등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공기업의 대졸 초임은 자국 1인당 국민소득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비해 근속 연수가 길다는 점에서 민간기업에 비해 다소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기업은 민간 기업의 임금인상을 선도할 뿐만 아니라 국제 기준에 비추어보아도 당치 않게 많이 받고 있다. 그러니 생산성이 높을 수 없는 것이다.

조직의 사회, 경제적 기능은 소멸되어지는데도 고용안정과 고임금을 보장해 주는 공공부문을 개혁 대상으로 삼지 않는 정부를 누가 시장지향적이라고 하겠는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정부, 그리고 정치권이 공기업과의 먹이사슬을 유지하기 위해 재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공기업도 기득권을 버리고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국내외 시장에서 경제주체들이 기다리는 것은 구호로서의 개혁이 아닌, 작고도 효율적인 공공부문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강도 높은 실천방안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이 바로 공공부문이라는 점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박명호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