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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DJ·리콴유의 화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전 총리는 표면적으로 몇 가지 닮은 데가 있다.

두 사람은 두 살 터울의 거의 동년배요, 권위주의 체질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다. 우연하게도 두 사람은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과 인연이 있고,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평균 이상으로 유식하다. 두 사람은 아시아에서 '말발' 이 서는 지도자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은근히 경쟁관계에 있다.

1994년 3월 미국의 포린 어페어스는 리콴유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리콴유는 그 인터뷰에서 문화라는 것은 천명(天命)과 같은 것이어서 바뀌지 않는 것이고, 서양식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는 동아시아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것은 리콴유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 같은 아시아 지도자들의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생각의 핵심이다.

그해 11월 포린 어페어스는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당시)의 글을 실었다. 金이사장은 리콴유의 주장이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명분을 찾기 위한 거짓 주장이라고 공격하고, 맹자의 주권재민(主權在民)과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들어 동양의 전통사상이 민주주의 이념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金이사장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의 저항 때문에 아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이 더디다고 반박했다.

리콴유의 노선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그것과 같이 경제발전을 위해 정치적인 민주화를 유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89년 천안문광장에서 시위학생들의 뜻이 관철됐다면 오늘의 중국 경제는 훨씬 낙후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金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를 보장하면서도 시장경제의 실현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병행한다는 그의 노선이 아직은 혼란을 빚고 있다.

같은 동양적인 전통을 공유하는 金대통령과 리콴유의 입장이 이렇게 다른 데는 배경이 있다.

리콴유가 싱가포르의 '현실' 을 대표하고 있었다면 98년 2월까지의 金대통령은 자신이 실현하려고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우열을 비교하는 데서 생산적인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동양적인 전통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의 뿌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金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맹자의 유가(儒家)사상과 리콴유가 싱가포르의 나라 세우기에 원용했을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사상의 차이를 만난다. 주(周)왕조에의 향수를 담은 유가사상에 비해 법가사상은 실용적이고 개혁적이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는 한비자를 면담하고 법치주의로 국정을 개혁하고 국력을 키워 부국강병에 성공했다.

천하를 통일한 그는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도량형과 화폐와 문자의 서체를 통일하고, 농업.의학.점성술 같은 실용적인 분야를 제외한 관념적인 서적들을 불태우는 분서갱유(焚書坑儒)까지 해치웠다.

싱가포르에 언론자유와 정치적인 다원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리콴유의 권위주의 통치는 진시황의 사상통일의 현대판 같다.

김대중.리콴유의 화해는 아시아 지역 내에서의 남북협력과 아시아공동체라는 새로운 구상의 장래를 위해 반가운 일이다.

그들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만나 동북아시아.중국.한반도에 관한 깊이있는 대화를 가진 데 이어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다시 만났고, 다음달 서울에서 또 만날 것 같다.

노선 차이를 전제로 한 의기투합의 흔적이 보인다. 두 사람의 화해로 동남아 지도자들이 민주투사 출신의 金대통령에게 갖고 있던 경계심을 풀어 한국의 아세안 외교의 지평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21세기 경제의 글로벌리즘에는 19세기형 식민지주의의 변형 같은 측면이 있다. 아시아가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북미.유럽과 함께 세계경제의 세 중심축 중 하나가 되지 않으면 글로벌리즘을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김대중.리콴유의 '악수' 가 아시아 공동체 만들기의 상징적인 주춧돌의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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