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판결 공개’ 헌법 109조 어기는 사법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2호 35면

“사법개혁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1·2·3심 판결(문)을 모두 공개하면 사법개혁의 70~80%는 이뤄집니다.”

2일 서울 서초동 집무실에서 만난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대뜸 이 말부터 꺼냈다. 대법원 판결문은 중요한 사건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비실명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하급심 판결문은 비공개다. 김 회장은 이를 “법원의 정보 독점 욕구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사법개혁의 첫째 과제로 판결문 공개를 꼽은 건 시의적절해 보였다.

사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폭력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1월 14일)과 MBC PD수첩 제작진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무죄 판결(1월 20일) 이후 관심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법원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의 존치 여부와 형사 단독판사제의 개선. 보수냐 진보냐 하는 판사의 성향과 재판부 구성 방법과 관련된 문제다.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민사건 형사건 소송 수행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남이 아닌 ‘나’의 문제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법률심인 대법원 판결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실심인 1·2심 판결문의 공개가 중요하다. 김 회장은 “이른바 ‘기교 사법’이 가능한 건 유무죄 결론에 맞춰 한쪽에 유리한 증거만 채택하기 때문”이라며 “하급심 판결을 공개하면 아무렇게나 판결을 못 한다”고 지적했다. 판결 공개는 전관예우도 척결할 수 있다. 동일한 범죄에 대해 어떤 사람은 실형을 받았는데 전관을 쓴 사람이 집행유예를 받았다면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는 게 금세 밝혀진다. 판사들끼리만 정보를 독점하기 때문에 전관예우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판결 공개를 한마디로 “사법에 햇볕을 쬐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판결문 공개 문제에 법원은 곤혹스러워한다. 1·2·3심 판결을 모두 인터넷에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생활 침해와 범죄 악용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헌법은 판결을 공개하라고 돼 있다. 법원은 판결문 공개는 기술적 문제이기보다는 인력과 비용의 문제로 본다.

2005년 내부 용역 결과 판결문을 전부 공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330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에선 매달 나오는 법원공보 등 책에는 판례를 실명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에선 인터넷으로 모든 판결을 공개한다. 법원이 아닌 민간 업체가 주관한다. 일부 판사는 마음 같아선 변협에 자료를 다 주고 알아서 공개하라고 하고 싶다는 얘기도 한다. 사법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온다. 판결 불신 사태의 여파가 가라앉아 가던 5일 39세 판사가 69세 소송 당사자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튀어나오느냐”고 법정에서 막말한 사건이 공개됐다. 법원으로서는 상처 난 데 소금을 뿌린 격이 됐다.

하지만 그런 막말 판사들의 판결문을 검증해 보고 싶은 충동은 기자인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판결문 공개를 위한 ‘사법정보공개법’ 제정에 시동을 걸어야 할 적기는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