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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대나무의 공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2호 35면

황철웅: “(영의정님의 목숨을) 거두겠습니다. 남기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임영호: “가서 전하시게.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찧을 수 없다’고.”
황철웅: “좌상께서 전하랍니다. ‘대나무는 곧으나 기둥으로는 쓸 수 없다’고.”

요즘 한참 뜨는 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입니다. 드라마를 권선징악의 줄거리로 본다면 황철웅(이종혁 분)이 전하는, 권모술수의 정치인 좌의정 이경식(김응수 분)의 말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도 세월의 때가 묻어서일까요? 갑자기 좌상의 말이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겨울에 눈에 띄는 나무 하면 대표적인 것이 대나무와 소나무입니다. 마찬가지로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눈에 띄는 인재에도 대나무형과 소나무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대나무형 인재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망할지언정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꺾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회사는 바르게 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표이사 혹은 창업자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 창업자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는 이유는 대나무형 인재가 보통 창업 때부터 같이 동고동락한 사람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소나무형 인재는 생존을 따지는 사람입니다. 가지 하나 내어 주더라도 줄기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나무에는 상처가 없지만 소나무에는 가지 잃은 상처가 그토록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느 대기업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저의 뾰쪽한 성격을 우려하시던 저의 윗분이 어느 날 저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송 차장, 내가 중역이 되고 나니까 말이야. 아랫사람이 와서 이야기하면 그 사람이 바른 이야기를 하는지 아니면 아부를 하는지는 말을 꺼내는 순간 알게 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아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달콤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점점 좋아져. 자리는 올라갈수록 외로운 것이거든.”

프리랜서 일을 하다 보면 창업자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사업을 경영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대나무형이라기보다 소나무형입니다. 처음에 대나무형이었던 분들도 풍설(風雪)을 겪으면서 점차 소나무형 체질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마 대나무 체질로는 무거운 조직의 지붕을 떠받칠 수 없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는 줄기를 보호하기 위해 가지를 자꾸 자르다 보니 체질이 소나무로 바뀐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기업이 나무숲이라면 이상적인 나무숲은 소나무형 리더 아래 소나무와 대나무가 골고루 자라고 있는 나무숲일 것입니다. 대나무는 뾰쪽하여 리더가 품기엔 까칠하지만 그 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나무입니다. 기업의 미래를 만드는 나무입니다. 반면 소나무는 자신의 뿌리를 깊게 내려 조직을 두텁게 만드는 나무입니다. 조직을 안정적으로 키우는 나무입니다.

훌륭한 리더는 까칠함이 밥 속의 돌과 같고 아프기가 목에 걸린 가시 같아도 대나무형 인재를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가까이 둡니다. 그리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그가 소나무형 인재로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대나무는 곧으나 기둥으로는 쓸 수 없다.” 이 말 속에는 ‘영원히 대나무로 살고 싶은 사람은 조직의 기둥이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일정 기간 기여한 후 멋있게 물러나야 한다. 반면 조직의 기둥이 되려는 사람은 설령 지금 대나무이더라도 자신을 소나무로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드라마 ‘추노’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지금까지 대나무의 곧음만 알았지 소나무의 두터움을 모르고 살았구나.” 그리고 미안해졌습니다. 저의 대나무 같은 성격 때문에 괴로웠을, 그동안 제가 모셨던 윗사람들에게 미안해졌습니다. 저의 뾰쪽한 성격 때문에 힘들게 살아왔을 저의 가족들에게 미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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