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감독을 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비유한 사례는 너무도 많다.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축구는 기업 운영과 공통점이 적지 않다. 목표는 같지만 그 길로 인도하는 방식은 다르다.
EPL을 호령하는 감독
헌신-밥 페이즐리
1970~80년대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끈 밥 페이즐리 감독은 스무 살이던 39년 리버풀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리버풀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선수·물리치료사·코치·감독·단장 등 역할을 바꿔가며 죽을 때까지 오직 리버풀에만 충성했다. 전형적인 ‘원 클럽 맨’이다. 9년의 감독 재임기간(74~83년) 동안 UEFA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3회 등 총 19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단장이 된 후에도 그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했다. 사비로 표를 구입해 팬들에게 나눠주고 연습 장면을 서포터에게 공개했다. ‘팬이 없으면 구단도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96년 페이즐리가 숙환으로 별세하자 리버풀은 경기장 출입구에 ‘페이즐리 문’을 만들어 그의 열정을 기렸다.
냉철-알렉스 퍼거슨
‘팀보다 더 큰 선수는 없다’. 86년 맨유 지휘봉을 잡은 알렉스 퍼거슨은 팀에 해악을 끼치는 선수는 제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눈감아주지 않았다. 이적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숙청' 이었다.
89년에는 훈련 때 알코올 냄새를 풍긴 노먼 화이트사이드(273경기·66골)와 폴 맥그래스(163경기·12골)를 내보냈다. 95년에는 92~93, 93~94시즌 우승의 주역 마크 휴스, 폴 인스,안드레이 칸첼스키를 무더기로 이적시켰다. 그러나 맨유는 96~97, 97~98시즌에도 리그를 제패했다. 2003년에는 베컴을, 2006년에는 판 니스텔로이를 내보냈다. 베컴은 아이가 아프다며 훈련에 빠지고 판 니스텔로이는 팀플레이를 등한시해 눈 밖에 났다.그래도 맨유는 여전히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하고 있다. 늘 팀을 건강하고 활기 있게 유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지난 시즌 리그 12골에 그친 웨인 루니가 이번 시즌 20골을 터트리며 득점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미래-아르센 벵거
96년 아스널 지휘봉을 잡은 아르센 벵거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선수를 영입하는 보기 드문 감독이다.
99년 유벤투스에서 아스널로 건너온 티에리 앙리는 8년간 구단 역사상 최다인 226골을 터뜨린 대스타가 돼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벵거가 키운 아넬카는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첼시에서 뛰고 있다. 아데바요르도 아스널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돼 맨시티로 이적했다. 이들 모두 아스널에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남겼다.
유망주에 대한 벵거 감독의 투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돈만 번 게 아니다. 벵거 감독은 부임 13년 동안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리그 우승 3회(98·2002·2004), FA컵 우승 4회(98·2002·2003·2005)를 이뤄냈다. 아스널 팬들은 구단에 벵거와 ‘종신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