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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엔 르네상스의 정신이 흐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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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20면

“You base football player.”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등장하는 대사다. 1막의 4장. 리어왕의 충신 켄트 백작이 무례한 하인 오스왈드를 넘어뜨리며 이 대사를 한다. 대사 중의 ‘축구선수(football player)’ 부분은 번역가들을 곤란하게 한다. 보통 “축구나 하는 이 천한 놈아”라고 번역한다. “이런 버릇없는 놈” 정도로 의역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때의 ‘축구선수’란 욕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셰익스피어의 작품 대부분은 사후에 헨리 콘델과 존 헤밍이 정리했다. 그것이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 판이다. 셰익스피어는 2035개의 단어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햄릿’에서만 약 600개나 된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단어 가운데 800여 개는 아직도 사용된다.셰익스피어는 흥행을 위해 연극 대본을 썼다. 그가 만든 단어는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저자에서 사용하던 말이었을지 모른다. 1608년 발표된 리어왕에 쓰인 ‘축구선수’는 거칠고 상스러운 인물을 뜻했으리라. ‘이런 깡패 같은 놈’ 정도? 당시의 축구는 거칠었을 것이다.

1605년 옥스퍼드의 보들리언 도서관이 소장한 약 6000권의 책 가운데 영어로 쓰인 건 36권에 불과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영어는 신분 상승을 이룬다. 셰익스피어 연구자 스탠리 웰스는 “셰익스피어의 출생 기록은 라틴어로 돼 있지만 사망 기록은 영어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토머스 칼라일은 ‘영웅 숭배론’에서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다면 다르게 말했을지 모른다. “축구를 나의 작품 전부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영국은 인도를 잃었다. 대영제국에도 해는 진다. 그러나 축구의 제국에는 일몰이 없다. 영국은 축구의 고향이며 세계 축구의 지배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그 권력의 상징이고 심장이다. 이제 축구선수란 욕이 아니라 돈과 명성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은 상당수가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다. ‘베니스의 상인’ ‘베로나의 두 신사’는 제목에 이탈리아의 도시가 등장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로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파도바, ‘오셀로’는 베니스가 배경이다.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은 인물이다. 르네상스 시대는 도시의 시대였다. 도시들은 자유롭게 교역했다. 그럼으로써 르네상스는 유럽을 가슴에 품었다.

21세기의 유럽은 하나가 돼 간다. 그러나 축구는 고전의 시대를 산다. 자치와 독립, 교류라는 르네상스적 가치에 충실하다. EPL은 르네상스적 전통의 계승자이며 에센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첼시·아스널 같은 빅 클럽은 ‘폴리스’이며 현대의 베네치아·밀라노·나폴리다. EPL의 본질은 간단명료하다. 기술과 돈과 경영이 폴리스의 운명을 좌우한다. 맨유·첼시·아스널 같은 클럽은 이 구성 요소를 갖춘 강력한 폴리스들이다. 경영과 경기력은 같은 카테고리다. 강한 용병을 사들여 전력을 강화하면 패권을 잡을 수 있다. 세계의 일등 기업들이 그들의 이름을 클럽 문장 아래 새기기를 열망한다.

EPL은 용광로다. 세계를 녹이고 다시 분배한다. 세계 곳곳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이 모인다. 엄청난 이종교배가 이뤄지는 축구의 쇼케이스, 극강의 리그로 돈이 모인다. 돈이 모이는 리그가 최강의 리그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미디어를 통해 세계에 공급된다.
축구의 ‘폴리스’는 굳건한 성을 쌓고 계약에 따라 거래한다. 폴리스를 옹위하는 철옹성은 ‘올드 트래퍼드’ ‘화이트 하트레인’ ‘안필드’ ‘스탬퍼드 브리지’ 같은 대형 스타디움들이다.

성은 누가 지키는가. 르네상스는 용병대장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들은 높은 급료를 받고 대포, 즉 캐넌(Canon)으로 성루를 두들겼다. 현대의 캐넌들은 빅클럽이 제시하는 엄청난 몸값을 따라 이동한다. 그들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같은 수퍼스타다.르네상스 시대의 사람 마키아벨리는 용병의 시대에 시민군을 꿈꿨다. 스타디움에 시민군은 없는가? 프랜차이즈 스타? 아니다. 그들도 성공하면 또 한 명의 용병대장이 돼 더 많은 급료를 주는 클럽으로 떠날 뿐이다. 호날두는 리스본에서 자라 맨체스터에서 성공했고 지금은 마드리드에 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의 성을 떠나지 않을 충성스러운 시민군이 있다. 태어난 고향, 그 고장 축구와의 사랑을 배신할 수 없는 사람들. 서포터가 그들이다. 스탠드를 메운 그들이 폴리스의 진정한 주인이다. 작가 닉 혼비는 『피버 피치』에서 그가 사랑하는 아스널의 경기를 처음 보고 난 뒤의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축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마치 훗날 여자들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될 때처럼, 느닷없이, 이유도 깨닫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축구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그런데 왜 EPL인가?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전장의 한복판에 시민군처럼 우뚝 서 있지 않은가? 박지성과 이청용을 생각하며 눈 내리는 스탠드에 서서 그들의 응원가인 ‘개고기송’을 부르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가? EPL의 전장을 감상하기 위해 브라운관을 밝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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