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패트롤] 정책 신뢰 급선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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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요즘 모이면 경제 걱정이다. 지난주 현대 사태가 좀 진정되나 했더니 원화 가치가 급등락했다.공기업인 한국전력의 노조가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을 반대하며 파업을 별렀다.

노동계는 구조조정에 따른 인원정리 등에 반대하며 12월 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대우자동차는 조업중단이 계속되는 가운데 하청업체가 견디다 못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지난주말 실낱같은 출구가 보였다.모처럼 여야가 대화의 정치에 나섰다.야당이 무조건 국회 등원을 발표하자 내리막길의 원화 가치가 멈췄고,주가도 올랐다.시장의 정치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국회가 30일 공적자금 동의안을 처리하고 내년 예산안을 심의하는 등 제 기능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고 금주에 현안이 모두 풀릴 것 같지는 않다.여전히 그 연장선상에 있겠지만,정도는 지난주만큼 심각하진 않을 것이다.원화 가치는 당분간 달러당 1천2백원 아래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환율이 1천2백원을 넘어서면 정부가 개입할 움직임이라서 이 심리적 저지선을 두고 시장이 눈치 싸움을 벌일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77억달러,외환보유고도 9백34억달러(9월말 기준)이므로 급할 때 막을 실탄은 여유가 있다.월말에는 수출대금도 많이 들어온다.

정부는 금주 안에 국회 상임위에서 한전 구조개편 법안에 대한 심의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24일부터 전면 파업하겠다던 한전 노조가 29일까지 파업을 유보했는데, 그 안에 양쪽의 입장 차가 좁혀질지 미지수다. 미뤄오던 기업·금융·공기업의 구조조정을 한꺼번에 시한을 두고 몰아서 하려니 힘이 부치고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대우차 협력업체의 부도를 막으려면 협력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몸통인 대우차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군산공장 내 대우 상용차 노조가 24일 희망퇴직과 인건비 절감 등에 대한 자구계획 합의서를 회사측에 냈다.

조합원이 8백명인 미니 노조지만 1사2노조 체제에서의 상용차 노조의 변화는 구조조정 동의서 제출 문제를 놓고 다시 마주앉은 대우차 노사 협상에도 타결을 이끄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달력도 이제 겨우 한 장 남았다. 서민들은 올 겨울이 유난히 춥다.부도와 실업의 찬바람 속에 호주머니는 얇아지고 장사도 잘 안된다. 너도나도 움츠러들어 소비가 줄어 걱정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앉아서 3년 전 외환위기를 맞았던 어리석음을 다시 범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자고 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상황의 위기’가 아니다.

서로 믿지 않고 반목하며 불안해하고 정책이 신뢰를 잃은 ‘대처능력의 위기’다. 따라서 정부 정책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치와 국회가 제 기능을 하고, 경제 주체가 제 자리를 찾으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서 위기의 불을 끌 수 있다.12월을 준비없이 떨면서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양재찬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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