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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겨도 발은 편해, 남자들 싫어해도 인기 여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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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04면

패션에 문외한인 내게도 겨울만 되면 ‘지름신’이 강림하는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어그 부츠다.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사는 내게 딱히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백화점에 진열된 것을 볼 때면 늘 살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미국에서 수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어그 열풍은 해마다 그 열기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2000년대 초 캐머런 디아즈, 케이트 허드슨 등 일부 할리우드 여배우가 어그 부츠를 신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포착됐을 때만 해도 이 못생긴 부츠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제품명도 못생겼다는 뜻의 단어 ‘어글리(ugly)’에서 이름을 따 어그 부츠일까.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문화 - 어그 부츠 인기

패션업계에서도 기껏해야 잠깐 유행하고 말 품목이라고 예견했지만 연예인들의 ‘어그 사랑’은 계속됐다. 2005년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진행하는 ‘오프라 쇼’에서 어그 부츠를 방청객 전원에게 선물했고 이후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어그 부츠를 두고 “연예인 덕에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대박 상품”이라고 평했다.하지만 그 앙증맞으면서도 포근해 보이는 어그가 남성들에게는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지난달 영국의 한 패션전문 웹사이트가 18~30세 남성 15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어그는 남자들이 싫어하는 스타일의 여성의류(및 소품) 1위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았다. 무려 응답자의 57%가 어그를 가장 싫어하는 아이템으로 꼽았다.

실제로 미국의 포털 사이트 야후에는 “왜 남자들은 어그 부츠를 싫어하죠?”라는 식의 질문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한국에서도 여자친구의 어그 부츠를 보고 “영의정 신발이냐”고 놀렸다는 남성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걸 볼 때, 어그 부츠에 대한 남성들의 비호감은 국적을 막론하고 일반적인 추세인 듯하다. 남자들은 왜 어그 부츠를 싫어할까. 한 남성 패션 블로거는 어그 부츠의 유행을 ‘바이러스’에 비유하면서 “UBV(Ugg Boots Virus)가 전 세계 여성들의 섹시함을 다 망가뜨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그 부츠는 여성의 몸매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부츠다. 오히려 자칫 다리를 더 짧고 굵어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마저 준다.

생각해 보면, 여성의 의복이나 소품이 주는 섹시함은 불편한 착용감과 정비례하는 듯하다. 일례로 얼마 전 크게 유행했던 킬힐이 그렇다.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자극한다는 킬힐은 빅토리아 베컴이 즐겨 신어 유행하게 된 아이템이다.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유행시킨다는 그녀는 지난 수년간 15㎝가 넘는 굽의 뾰족구두를 애용해 왔다.그러나 빅토리아 베컴은 킬힐로 망가진 발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킬힐 때문에 여성들의 다리와 허리가 망가진다는 경고성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누가 이름 붙였는지 모르지만 킬힐이 정말 사람 잡는 신발이 된 셈이다. 성적 환상이고 뭐고 간에, 걸을 수나 있어야 남자를 꼬시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그 못생긴 어그 부츠가 남성들의 구박에도 수년간 여성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멋 부리다 고꾸라져 죽느니 역시나 내 발 편한 게 우선이다.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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