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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쇼크 … ‘꼬리’ 그리스가 세계 금융 ‘몸통’ 흔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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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 한 여성이 일본 도쿄시내에 설치된 주가지수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주요 국가의 주가지수는 일제히 내림세를 타면서 화살표가 모두 아래로 향했다. 유럽·미국에 이어 아시아의 금융시장이 요동친 것이다. [도쿄 AP=연합뉴스]

유럽에서 시작된 눈보라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한두 나라가 흔들리면 유럽 전체가 불안해지고, 이게 미국을 거쳐 아시아와 신흥시장으로 파장을 미치고 있다.

4~5일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쇼크의 진원지는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유럽 국가였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외화표시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그리스의 경우 4일(현지시간) 하루 새 0.31%포인트 오른 4.28%가 됐다. 한국(1.17%)의 3.6배다.

투자 심리는 즉시 얼어붙었다. 4일 유럽 각국의 주식시장은 2~3% 하락한 데 이어 5일에도 큰 폭의 하락세로 출발했다. 미국 뉴욕 증시 다우존스지수는 4일 2.61%까지 빠진 1만2.18로 장을 마쳤다. 5일에도 하락세가 이어져 장 초반 지수는 1만 선 아래로 내려갔다. 오전 10시20분(현지시간) 현재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0.57% 하락한 9945.58이었다.

한국도 비켜가지 못했다. 5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3.05%(49.3포인트) 하락해 1567.12로 마감했다. 원화가치는 19원 하락한 달러당 1169.9원이 됐다. 일부 국가는 더 많이 하락했다. 브라질 주가는 4.73%, 대만 주가도 4.29% 하락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연구원은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일부 신흥국의 낙폭이 컸다”고 말했다. 제로금리 상태인 미국에서 달러를 싸게 빌려 신흥국에 투자하는 게 ‘달러 캐리 트레이드’인데, 시장이 흔들리자 투자자들이 이를 회수하는 분위기라는 얘기다.

위기의 뿌리는 일부 국가의 나라 빚이다. 문제는 빚을 내 흥청망청한 나라만 휘청거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은 통합 경제권이다. 한 나라가 재정 적자로 흔들리면 국채시장 마비→자금조달 비용 상승→국가 부도→유럽 금융시장 마비→투자자금 이탈→글로벌 신용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세계 금융위기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퍼펙트 스톰’을 맞아 배가 침몰할 수 있다는 얘기다.

4일 증시 급락에 넋을 잃고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직원. [AP=연합뉴스]

그리스의 경우 유로존 국가의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 파괴력은 엄청나다. 최악의 경우 유럽 전체가 흔들리고, 미국과 아시아도 안심할 수 없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해 말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낮췄다. 나라 빚이 많은데도 재정 적자가 계속 늘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리스의 재정 적자는 GDP의 12.7%(잠정치)까지 확대됐다.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치(6.4%)의 두 배다. 나라 빚 규모도 GDP의 113.4%나 돼 이탈리아(114%)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높다.

그런데도 위기 극복을 위해 쓸 만한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해 공동 통화인 유로화를 쓰는 나라가 됐다. 유로존에 가입하면 독자적 통화정책을 쓰지 못한다. 경상적자가 쌓이고 산업경쟁력이 나빠지면 자국 통화를 절하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유로라는 단일 통화체제에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리스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에 매달렸다. 게다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6%나 되는 서비스업도 타격을 입으면서 외통수에 몰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관광산업이 침체한 게 결정적이다. 반면 사회복지비 지출은 매년 늘렸다. 나라살림은 이렇게 거덜이 났다.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비슷한 상황이다. 사회복지비 지출은 느는데 정부는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나랏돈을 펑펑 썼다. 이들은 뒤늦게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올해 ▶국방비 삭감 ▶공공부문 급여 동결 ▶탈세 단속 등을 통해 재정적자를 GDP의 8.7%로 낮출 계획이다. 하지만 정쟁이 심해 제대로 결실을 맺을지 의문이다. 일단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과 선진국들이 그리스 등을 지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래서 세계의 이목은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비공식 유럽 정상회의에 쏠리고 있다.

권혁주·서경호 기자

◆CDS=신용부도스와프. 채권이 부도나면 원리금을 물어주는 파생상품이다. 거래의 대가로 채권 보유자가 금융회사에 내는 수수료가 ‘CDS프리미엄’이다. 부도 위험이 클수록 CDS프리미엄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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