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라운드 테이블] 경영·금융 컨설팅 업계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경제가 어렵다고들 야단이다. 3년 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급전을 빌려왔을 때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우자동차와 동아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국내 최대 건설업체인 현대건설도 휘청거리고 있다.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머뭇거리면서 제2 위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외국 기업인들은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 보았다.

로버트 펠튼 맥킨지 앤드 컴퍼니 서울사무소 대표,에릭 베르뗄레미 소시에테 제네랄은행 서울지점장 겸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은행분과위원장, 박성일 딜로이트 컨설팅 한국법인 회장, 이재형 앤더슨 컨설팅(내년초 '엑센츄어' 로 상호변경 예정)서울사무소 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 한국의 현 경제상황

▶로버트 펠튼=미국의 경우 1970년대 후반 시작한 구조조정이 15년 정도 걸렸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한국의 경우 이제 15% 정도 진행된 수준이라고 본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이자도 못 갚을 정도로 재무 상태가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최근 보여준 구조조정 노력 또한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이재형=구조조정 초반에는 정부의 의지가 강했고 국민들도 협조적이어서 잘 추진했지만 최근에는 정부나 국민 모두 자만에 빠진 것 같다. 전반적인 구조조정 작업이 뒷걸음질 치는 느낌이다. 기업들이 그동안 재무 상태를 약간 개선했는지는 몰라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심각한 상황이며 다시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에릭 베르뗄레미=한국 기업들의 회계원칙.경영 투명성 등이 여전히 확실하지 않아 해외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액주주 권한 강화 등을 통해 경영을 보다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이 경제 위기를 다시 겪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수는 있다.

▶펠튼〓일본식 장기 불황보다는 멕시코와 같은 정기적인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식 모델은 돈이 많은 나라에나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매 5년 또는 10년을 주기로 경제 위기를 맞는 멕시코식 불황 모델을 경계해야 한다.

▶박성일〓그동안 거시경제 지표가 상당히 개선됐기 때문에 제2의 외환 위기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실기업.은행을 확실히 정리하지 못하고 지원을 계속한다면 불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 구조조정서 정부의 역할

▶베르뗄레미=프랑스의 경우 정부가 과거에는 이것 저것 간섭하는 일이 많았는데, 최근 15년 사이 크게 줄였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부 정책을 보면 20년 전의 프랑스 정부를 보는 것 같다. 정부의 개입을 대폭 줄여야 한다. 특히 아무리 큰 회사라도 퇴출하거나 회생하는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펠튼=정부가 자꾸 개입하면 멕시코와 같은 상황, 즉 산업체.금융기관 등 국가 경제주체의 70%를 정부가 소유하게 되는 위험에 빠진다. 정부는 한발짝 물러서야 한다. 정부가 개입하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궁극적으로는 경제가 어려워진다. 최근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박=문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은 오히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업.은행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저비용.고수익의 효율을 이룰 수 있는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남미 국가들은 기업.금융 부실을 공적자금으로 보조해 경제 효율을 떨어뜨린 데 비해, 영국은 대담하게 노조 활동을 제한하면서 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의 효율을 높였다. 그 결과 실업 문제도 개선했다. 정부는 규제를 철폐하고 노조 문제에 일관성있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 하는 방식이라면 경제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이〓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부는 부실기업 처리 때 냉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치적 배경이나 경제에 미칠 후유증을 감안해 부실기업을 계속 지원하는 것은 곪은 상처만 키우는 셈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구조조정이 단기적으로 끝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해야 하는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 기업구조조정의 방향

▶박〓최근 현대건설 사태의 경우 유동성 부족의 문제라면 정부가 간여할 게 아니라 은행이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이에 비해 대우차는 경영 투명성의 문제가 더 크다. 재무자료를 투명화해 매각 협상때 상대방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너럴모터스(GM)에 일부 공장만 조기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 하다. 정부가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에게 현대건설 회생에 협조를 부탁한 것을 너무 단순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재벌은 서구 기업과는 달리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했으므로 오너의 공적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베르뗄레미〓오너 일가가 현대건설을 돕는 것은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자동차가 건설을 도우면 자동차 측 소액 주주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대우차든 현대건설이든 리스크(위험)을 안고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시간을 끌수록 경제 전체가 어려워진다.

*** 금융구조조정의 방향

▶이〓은행간 합병 등 금융 구조조정이 본격화할텐데, 부실은행끼리 합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금보장 제도가 확대되고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우량 은행으로 돈이 자연스레 몰릴 것이기 때문에 부실은행끼리 합쳐 보아야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베르뗄레미〓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합병 등에 외국계 은행이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도 안타깝다. 금융시장을 더욱 개방해야 한다. 외국계 은행의 노하우는 한국 금융 시장을 자극하고 선진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박〓작은 부실 은행 몇곳을 합병하는 것은 큰 부실 은행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합병이 성공하려면 인원 축소.전산망 통합 등을 먼저 이뤄야 한다. 미국의 경우 씨티와 트래블러스와 같은 우량은행끼리 합병한 후에도 감원 등 작업이 계획대로 안돼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못냈다.

정리=서익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