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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갈라설 거면 아이에 상처라도 적게 … 법원이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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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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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에 이혼 사건이 배당됐다. 주민(5·가명)이의 부모가 낸 이혼소송이다. 2008년 별거에 들어간 부모는 주민이 양육권을 놓고 다퉜다.

“아이가 아빠를 만나고 오면 이상한 흉내를 낸다.”(엄마)

“엄마와 살면서 애 지능이 떨어진 것 같다.”(아빠)

재판 과정에서 입에 담기 힘든 험한 말이 오갔다. 부모의 불화로 주민이는 “모든 게 나 때문이야”라며 대인기피 증세까지 보였다.

재판부는 현재 엄마와 생활하는 주민이에게 아빠·엄마와 함께 지내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섯 가정을 대상으로 캠프를 열었다. 프로그램은 양평의 한 캠핑장에서 1박2일 동안 진행됐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부모 모두와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주민이는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와의 이별을 직감한 듯했다. 지난달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양육은 어머니가 하되 주말에는 아버지와 지낼 수 있도록 면접 교섭을 보장하라”고 판결했다. “아이에게는 아버지와 있을 권리도, 어머니와 있을 권리도 있다”는 취지였다. 주심을 맡았던 이선미 판사는 “재판과정에서 양측의 주장은 격해진 감정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며 “부모가 양육권 다툼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혼 가정 자녀 솔루션’이란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실시하고 있다. 감정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이혼 재판 과정에서 아이가 부모의 공격 도구로 쓰이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되도록 ‘쿨한 이혼’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가정법원 가사 재판부의 의뢰로 가동된다. 솔루션팀은 판사 6명과 가사전문조사관 5명, 박정윤 중앙대 가족복지학과 교수 등 외부자문위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솔루션팀은 ‘끝장토론식 심리상담’을 제공한다. 가정법원에서 위촉한 외부 상담위원들이 가정 파탄 경위는 물론 양육 열의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상담을 한다. 이선미 판사는 “기존 상담이 부부의 불화 원인을 찾고 재결합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솔루션팀의 상담은 아이가 겪는 심리적 고통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아빠 허락을 받지 않고 엄마를 만나면 매를 맞는다”고 폭언하는 아버지, “아빠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어머니는 집중 교육 대상이다. 일대일 교육을 통해 그런 언행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를 알려준다. 아이의 심리 불안이 심할 때는 인근 구청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심리치료·놀이치료 등을 받게 한다.

지난달에는 일곱 가정이 솔루션팀에 보내졌다. 가정 불화로 자녀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보이는 등 심각한 위기에 놓인 가정들이었다. 솔루션 교육에 임하는 부모의 태도와 상담 내용은 재판부에 제출돼 재판 참고 자료로 쓰인다.

서울가정법원은 시범 운영을 한 뒤 전국 지방법원 가사부에 프로그램을 보급할 예정이다.

이현택 기자


“네 엄마 때문에 이혼”X “널 변함없이 사랑해” ○

이혼 앞둔 부부 어떤 교육받나
 “이혼에 따른 분노를 자녀에게 쏟아내서는 안 됩니다. 부모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아이가 비뚤어지지 않습니다.”

지난달 25일 서울가정법원 1층 강의실. 이혼을 앞둔 부부 10여 명을 상대로 ‘미성년 자녀를 위한 부모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황혜순 가정법원 가사전문조사관은 “부부의 문제와 부모의 문제를 구별하라”고 강조했다.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은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화법도 제시됐다. 이혼 사실을 자녀에게 전할 때 “네 엄마(아빠) 때문에 따로 살게 됐다”는 식의 말은 곤란하다. 이보다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변했지만 너에 대한 애정은 변함 없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들은 이혼에 따른 자녀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서도 배운다. 황혜순 조사관은 “부모의 이혼에 대해 자녀들은 부인→분노→거래(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치다 결국 ‘우울한 수용’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원만한 이혼 소송 진행을 위한 법률적 조언도 곁들여진다. ▶친권자·양육자는 누구로 할 것인지 ▶면접교섭(양육하지 않는 부모와 자녀가 만나는 것)을 얼마나 자주 할 것인지 ▶양육비는 어떻게 정해지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이현택 기자

이혼 결정을 내리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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