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 ‘아리따운 구매’ 첫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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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아모레퍼시픽 심상배 부사장(오른쪽)과 제주 동백마을 김현섭 주민 대표가 동백꽃을 들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 ‘동백마을’. 제주도 지정문화재인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이 생길 당시인 1700년대 초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동백나무가 자라 숲을 이뤘다고 한다. 150여 명의 주민은 감귤 농사를 짓는 노인이 대부분이다.

4일 오전 아모레퍼시픽 심상배 부사장이 이곳을 찾았다. 마을 대표인 김현섭(44) 동백고장보존연구회장과 협약을 맺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이 동백마을에서 나는 동백꽃·열매를 화장품 원료로 구매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협약은 지난해 4월부터 도입을 추진해 온 아모레의 ‘아리따운 구매’의 첫 결실이다. 아모레는 지속가능경영(윤리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지역사회에서 나는 제품 원료를 ‘공정한 가격’에 직접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9월 원료 물색을 위해 이 마을에 들렀던 김성우 구매팀 사원은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300년 된 동백나무 숲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동행한 연구원과 함께 동백꽃·열매를 따 성분을 분석한 결과는 ‘A’등급. 올레인산이 많고, 리놀산은 적어 피부 산화를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근처에 오염원이 될 만한 축산 농가도 없어 안전했다.

김 사원이 동백 원료를 사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주민들은 대환영이었다. 김현섭 회장은 “방풍림으로 쓰던 동백을 원료로 쓰겠다고 해 고마웠다”며 “감귤 농사를 쉴 때 일거리가 없었던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게 됐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에서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산지 마을에서 직접 원료를 사들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상배 부사장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아 유통단계가 줄었다”며 “마을은 동백숲을 소득보전 수단으로 활용하고 우리는 좋은 품질의 원료를 확보할 수 있어 ‘윈윈’인 셈”이라고 말했다. 아모레가 ‘아리따운 구매’ 1호로 동백을 택한 것은 회사 역사와 관계가 깊다. 창업자 서성환 회장의 어머니인 윤독정 여사가 1930년대 개성에서 처음 썼던 화장품 원료가 바로 동백기름이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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