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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일본, 소주에 푹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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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요즘 일본 최대의 고구마 산지인 규슈(九州)의 가고시마(鹿兒島)현에선 '고구마 쟁탈전'이 한창이다.

고구마 수확기를 맞아 물량을 확보하려는 전분업체들과 소주 주조업체들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현 지사까지 중재에 나서는가 하면 연일 "제발 농가들이 고구마 증산에 나서 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진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원인은 '소주 붐'이다. 일본 전역에서 소주가 날개돋친 듯이 팔리면서 소주의 원료가 되는 고구마가 동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야후 옥션'에선 요즘 '소주'가 검색단어 1위다. 출고가가 1500엔(약 1만5000원)인 1800㎖짜리 가고시마산 고구마소주 '모리이조(森伊藏)'는 경매를 통해 20배가 넘는 3만엔 이상에 팔린다. 이 사이트에서만 한달 평균 1000건 이상 거래된다. 또 출고가 2415엔인 가고시마현 소주 '무라오(村尾)'는 평균 1만5000엔에 팔려나간다.

소주는 이제 일본 주류시장에서 새로운 리더로 부상했다. 소주는 지난해 반세기 만에 일본의 대표 술인 '니혼슈(日本酒:청주)'를 제친 데 이어 올 상반기엔 그 격차를 더욱 벌린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 점유율은 1994년 6%대에서 16%대로 올라섰다. 반면 94년 73.3%를 장악했던 맥주는 지난해 41.5%로 떨어진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30%대로 추락했다.

70년대 '게케이칸(月桂冠)'으로 대표되는 니혼슈, 80~90년대 아사히맥주의 '수퍼드라이'로 대표되는 맥주의 시대가 가고 소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소주 붐의 진원지는 증류식 소주다. 고구마.보리.쌀 중 곡물 하나를 원료로 해서 한 차례 증류시킨 '단식증류식 소주'가 주종이다. 원료의 향기와 맛이 비교적 진하게 남아 예전만 해도 '냄새 나는 아저씨 술'로 통했다. 하지만 곡물의 독특한 맛을 내는 기술이 나날이 개선되고, 혈전제거.피부미용 등에 좋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젊은이들과 50~60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 됐다. 현재 지역과 원료에 따라 맛이 다른 소주가 1000여종에 이른다.

미쓰이(三井)물산은 소주 붐을 해외로까지 넓히기 위해 올해 안에 규슈의 소주업체 6곳과 손잡고 공동 개발한 13종류의 소주를 미국에 판매할 계획이다.

부작용도 있다. 우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증류식 소주 생산 업체가 대부분 영세한 데다 원료 확보도 쉽지 않다. 일부에선 중국산 냉동 고구마나 충분히 여물지 않은 고구마를 원료로 쓰는 업체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국 업체들도 이런 소주 붐의 단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일본의 증류식과는 달리 희석식인 한국 소주는 증류식에 비해 담백한 맛을 찾는 30~40대 샐러리맨을 집중 공략해 성공했다는 평이다.

진로는 9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액 기준으로 일본 소주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진로가 일본에 수출한 소주는 5782만3000달러어치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본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소주의 당도를 낮추고 과음시 부작용이 작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가격도 소매점에서 700㎖ 1병당 837엔을 받는 고급화 전략을 쓴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밝혔다.

'경월''산'을 수출하고 있는 두산은 '겨울연가 DVD 증정' 등의 캠페인이 먹히면서 올 상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늘어난 223만 상자(700㎖짜리 12병 기준)를 수출했다. 이 회사의 박중열 부장은 "물을 중시하는 일본 소비자 공략을 위해 천연수를 쓴다는 점을 홍보했다"며 "올해 말까지 일본 수출 500만 상자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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