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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고 자크 샤방 델마스 전 프랑스 총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난 10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자크 샤방 델마스 전 프랑스 총리는 프랑스 정치.경제.스포츠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위대한 드골파 정치인이자 레지스탕스 지도자이며 충직한 국민의 시녀를 잃었다" 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던 그는 프랑스 국내에서 연락장교로 활동하면서 파리 수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국민적 영웅이 됐다. 이같은 공로로 29살의 나이로 육군 준장의 자리에 올랐다.

'샤방(chaban)' 이라는 이름은 레지스탕스 운동 당시 그의 암호명. 레지스탕스 시절을 기념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거쳐 원래 이름인 '델마스' 에 '샤방' 을 붙여 '샤방 델마스' 로 개명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퐁피두 대통령 시절인 1969년부터 72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또 오랫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세 번이나 국회의장직을 맡았다.

특히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보르도 시장직은 47년부터 그가 80세 되던 95년 정년으로 그만둘 때까지 무려 48년간 역임했다.

하지만 화려한 그의 경력에는 늘 '기회주의자' 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보수적인 프랑스국민연합(RPF)의 좌파에 속해 있던 그가 급진주의를 표방한 제4공화국 연합정권 때 장관직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진보적 사회개혁주의자인 그가 총리 재임시 추진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은 보수주의자들로 가득찬 의회에서 공감을 얻지 못했고 결국 72년 세금 명세서를 조작했다는 루머로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이에 대해 "나의 몰락을 바라는 드골주의자들이 짠 각본에 희생된 것" 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회주의적 이상은 개혁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프랑스의 사회제도의 골격을 이룬 사회개혁 프로그램은 그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꼽힌다.

다재다능한 인물로도 유명한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린 또다른 분야는 바로 스포츠. 뛰어난 테니스 선수였을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프랑스 럭비 국가대표팀에서 윙으로 활약했던 그는 총리 재직 중이던 70년에는 파리에서 열린 원로 테니스대회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보르도 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럭비구장에서 진흙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는 이야기처럼 그는 삶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던 인물이었다.

48년이라는 재임 기간이 말해주듯 그는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아온 그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 포드와 IBM 등 첨단산업체를 잇따라 유치해 와인과 목재무역에 의존하던 이 지역을 현대적 감각을 가진 산업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기회주의자" "보르도를 자신의 봉토(封土)처럼 운영한다" 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프랑스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사랑하며 지켜온 '위대한 국민의 시녀' 였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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