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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와 삼성전자의 ‘1등과 2등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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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가속페달 결함으로 인한 도요타 승용차의 리콜 규모는 전 세계 1000만 대에 달한다고 한다. 정말 세상 일 모르는 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질 신화’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라며 누구나가 치켜세우던 도요타가 이 지경에 놓이게 됐으니 말이다.

기업에는 2등에서 1등이 되려 할 때와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전략이 다르다. 1등을 따라잡으려는 2등 기업의 제일 큰 가치는 신속성과 효율성이다. 나머지는 1등 뒤통수만 보고 달리면 된다. 그러나 1등이 된 순간부터는 갈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길을 뚫기 위해 첨병도 파견하고, 호박인지 수박인지 이것저것 다 찔러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신속성도 떨어지고 비용도 여기저기서 발생하게 마련이다. 2등 시절과는 다른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난 도요타 리콜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 도요타는 늘 2위 그룹이었다. 1등에는 제너럴모터스(GM)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다. 가야 할 목표와 길이 뚜렷이 보였다. 도요타로선 비용 절감을 위한 ‘가이젠(개선)’에만 몰두하면 됐다. 그러나 2007년 GM을 누르고 1등이 된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1등 유지를 위해선 가이젠뿐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가이카쿠(개혁)’가 요구된 것이다. 이건 도요타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1등을 지켜 내기 위해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의 한 업계 관계자는 “100%의 경영 자원을 가이젠에 두던 도요타가 1등 등극 후 ‘가이젠 70%, 가이카쿠 30%’로 분산하는 과정에서 생긴 혼란”이라고 규정했다. 2등 때는 걸러지던 실수들이 1등이 된 뒤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1등 기업은 힘들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삼성전자의 세계 1등 전자업체 등극 소식이 들려온다. 소니를 비롯한 1위 그룹에 뒤처져 있던 시절 삼성전자의 최대 강점은 신속성과 효율성이었다. 도요타와 같았다. 소니처럼 ‘불확실한’ 분야에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안 써도 됐고, 1등만 추격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한 ‘정찰비용’도 들게 됐다. 의사결정의 신속성도 예전 같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제는 2등이 아닌 1등의 위치에서 어떻게 싸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자칫 체질 전환에 실패하면 도요타꼴이 날 수 있다.

따라서 난 도요타 사태를 ‘일본 제조업의 붕괴’로만 재단하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1등이 되기보다 1등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평범하지만 무서운 진리는 어느 나라, 어느 기업에도 예외가 없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