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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집이야기] '춘향뎐' '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주변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가 갈수록 힘들다.

특히 한옥은 보존운동을 통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고, 자라는 세대가 그 정취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자연 경관의 특유한 아름다움에도 우리는 점차 무디어져 가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가을 경치가 화려한 유화 같다면, 우리의 가을 풍경은 수채화나 수묵화에 가깝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과 배창호 감독의 '정' 은 우리의 산수경관과 건축미를 빼어나게 담아내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엿보게 한다.

안개로 서리서리 감긴 산, 아스라이 눈덮인 산, 그 경치에 담아 안긴 형태로 지어진 누마루와 기와 지붕의 곡선, 초가집의 따스함‥.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집을 짓고 살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두 영화는 줄거리를 따라잡기보다 풍경화를 감상하는 태도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전체적으로 풍경화같은 장면 외에도 곳곳에서 우리 조상의 일상적인 삶의 단편을 볼 수 있다.

이도령이 글을 읽는 사랑방에 둘러쳐진 병풍은 흑백의 한시(漢詩)병풍이다.

그런데 이도령과 춘향이 사랑을 나누는 배경으로 등장하는 병풍은 일지매 병풍으로 색깔이 화려하다.

방안의 색채조차 남녀가 유별했음을 보여준다. 또 초가집일망정 별당에 부용당이란 이름을 달고, 처마 끝에 풍경(風磬.경쇠)을 다는 등 주거공간에 기울이는 정취가 은근하다.

시대적으로 1900년대 초가 배경인 영화 '정' 에 등장하는 집들은 더욱 다양하다.

주인공이 혼례를 치르는 초가집의 마당에서부터 한의원인 높은 대청의 한옥, 산골 옹기장수의 옹기 가마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일생을 따라 여러가지 유형의 한옥이 나타난다.

흔히 한옥하면 기와집을 연상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모든 집이 한옥의 범주에 들어간다.

특히 주인공이 매서운 시집살이를 하는 한옥의 안방은 문갑과 사방탁자, 보료, 다락문에 그려 붙인 화조도 등 개화기에 유복한 한옥 안방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이 사는 집 어디서든 등장하는 부엌의 무쇠솥은 그 시대를 살던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짐작케 한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아들 돌이와 사는 집 벽에 걸린 여러가지 상장과 사진에서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시골 집의 모습을 기억하는 관객이 이제 얼마나 될까. 문득 여고시절의 빛바랜 사진이 그리워진다.

신혜경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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