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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원 유산 싸움, 애인이 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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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년 전 사망한 홍콩 여성 재벌 니나 왕(왼쪽)이 생전에 연인이던 풍수 전문가 토니 찬(오른쪽)과 찍은 사진. 홍콩 지방법원은 2일 차이나 켐 자선기금이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홍콩 로이터=뉴시스]

사기꾼 풍수 애인에게 15조원 돈벼락은 없었다. 대신 공문서 위조에 따른 죗값이 따를 전망이다. 3년 전 사망한 홍콩 부동산 재벌 차이나 켐(華懋)회장 니나 왕(龔如心)의 19세 연하 연인 토니 찬(陳振聰·52)얘기다.

홍콩 지방법원은 2일 1000억 홍콩달러(약 15조원)에 달하는 왕의 유산은 차이나 켐자선기금에 상속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차이나 켐은 70년대 초반 니나의 남편인 테디 왕이 세운 회사로 홍콩의 대표적인 부동산개발회사다. 홍콩 시내 대형 빌딩만 수십 개에 달하고 직원은 4000명이 넘는다.

◆“찬의 유서는 위조”=재판은 2007년 4월 왕이 자녀 없이 난소암으로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초점은 두 가지였다. 왕이 작성했다는 두 장의 유언장 중 어느 것이 진짜냐와 찬이 재산을 상속 받을 만큼 왕과 객관적인 연인 관계였느냐였다. 왕은 2002년 차이나 켐 자선기금에 사후 모든 재산을 넘기겠다는 유언장을 썼다. 차이나 켐 측은 변호인 입회 하에 공증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왕이 사망하자 찬이 2006년 작성됐다는 별도의 유언장을 들고 나왔다. 그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3년 공방은 치열했다. 양측에서 36명의 증인과 풍수전문가 및 필적 감정사들이 맞붙었다.

재판부는 결국 찬이 가진 유언장의 서명이 위조됐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왕과 찬이 연인 사이였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재산상속을 할 만큼 공개적인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1992년 풍수가와 재벌 오너로 만난 둘의 관계가 매우 가까웠다고 해도 왕은 찬이 부인과 가족을 떠날 마음이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황제에서 죄인으로=법원 판결 전까지 찬은 홍콩 부동산 업계의 숨은 황제로 통했다. 왕과 찬이 자녀를 가질 것을 고민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게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이 그에게 공문서 위조 판결을 내림에 따라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홍콩 형법에 따르면 14년 이하 징역형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찬이 왕으로부터 받은 21억 홍콩달러(약 3135억원)에 대한 탈세도 문제다. 찬은 왕과의 객관적 연인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왕으로부터 받은 금품 목록을 공개했었다. 법원은 그동안 수천만 홍콩달러가 들어간 소송 비용도 찬이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물론 찬이 항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예단은 이르다. 그러나 홍콩의 경우 1심 법원의 판단을 상급법원이 뒤집는 경우가 드물어 찬의 몰락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니나 왕은 부동산 재벌이던 남편 테디 왕이 1990년 괴한에게 납치된 이후 법원으로부터 그에 대한 사망 선고를 받은 뒤 시아버지와 8년간의 법정 공방 후 남편 재산을 물려받아 아시아 최고의 여성 갑부로 군림했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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