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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스마트폰 포비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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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멧돼지 어금니처럼 뾰족한 이빨에 머리카락은 꿈틀거리는 뱀의 형상을 한 메두사. 그 메두사를 직접 본 사람은 돌로 변한다. 그러나 영웅 페르세우스는 거울처럼 광을 낸 청동 방패에 메두사를 비춰 목을 베는 데 성공한다. 돌로 변한 숱한 사람들과 페르세우스의 차이는 뭐였을까.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를 쓴 이은희 과학저술가는 ‘공포(恐怖)’라는 감정으로 설명한다. 흉측하고 끔찍한 메두사를 정면으로 본 사람은 엄청난 공포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 순간 교감신경의 자극과 신경 전달 물질인 에피네프린의 분비로 인해 심박동(心搏動)이 빨라지고 혈압은 떨어져 실신 상태에 이른다.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돌로 변했다’는 표현으로 과장된 게 무리는 아니란 얘기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처치할 수 있었던 건 이런 ‘공포 반응’을 비켜간 덕분이고 말이다.

현대인은 페르세우스와는 다르다. 공포증(恐怖症·Phobia) 홍수 속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다. 사회가 복잡해 불안 요인이 그만큼 많아진 탓이다. 각종 사고와 질병, 급격한 환경 변화가 끊임없이 공포증을 자극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성인 10명 가운데 6명꼴로 특정 공포증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고소공포증·대인공포증·광장공포증·비행공포증·동물공포증·폐소공포증 등 종류도 다양하다. 미국의 프레드(Fredd)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The Phobia List’라는 사이트엔 전문서적에서 찾아낸 공포증 명칭만 530여 개가 망라돼 있을 정도니 그저 무서울 따름이다.

여기에 최근 한국에선 공포증 병명 하나가 더 보태졌다. 다름 아닌 ‘스마트폰 포비아’다. 환자는 주로 ‘기계치’인 중장년층이다. 시대에 뒤처질까 봐, 혹은 회사가 일괄 지급하는 바람에 손에 쥐긴 했으나 보면 볼수록 요령부득(要領不得)이다. 휴대전화만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컴퓨터도 아닌 것이 그야말로 애물단지요, 계륵(鷄肋)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미국 심리학자 크레이그 브로드가 얘기한 ‘테크노 스트레스’로 인한 울렁증을 겪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지레 겁먹지 말 일이다. 공포는 항상 무지에서 생기는 법이다. 암호문 같은 스마트폰 아이콘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다 보면 그깟 ‘공포증’이 무에 그리 대수이겠는가. 맞닥뜨린 공포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 페르세우스가 전하는 메시지도 그게 아닐까.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