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리도 차세대 원전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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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미 정부는 1일(현지시간) 공개되는 2011년 예산안에 원전 건설 보증용으로 540억 달러를 추가 배정하는 안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AP통신이 지난달 31일 전했다. 지난 2005년 미 의회가 원전 건설 재개를 위해 배정해놓은 185억 달러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오바마는 지난달 27일 국정 연설에서 원전 건설을 주요 정책 과제로 꼽고 차세대 원전 건설 지원을 위해 정부 보증을 늘리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입장은 대통령 선거 당시 유보적인 태도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그는 원전 건설을 원칙적으론 찬성하면서도 핵폐기물 처리와 막대한 건설 비용 때문에 신중론을 고수해왔다.

실제로 오바마는 취임 후 수십억 달러를 들여 네바다주 사막 유카산에 짓기로 했던 고위험 핵폐기물 매립장 계획을 취소했다. 그가 임명한 스티븐 추 에너지장관은 미 의회가 배정한 185억 달러의 예산 집행을 미적거려 공화당으로부터 맹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구체화하면서 오바마의 입장이 확 달라졌다. 최소의 비용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은 원전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미국에는 31개 주에 10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다.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지만 청정 에너지만 따지면 70%가 원전에서 나온다. 그만큼 원전의 효율성이 높다.

정치적으론 상원에 발이 묶인 기후변화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원전 카드를 쓰는 게 불가피했다. 기후·에너지법안은 지난해 6월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선 공화당 반대로 계류 중이다. 공화당은 기후·에너지법안이 통과되면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미국 기업 부담이 늘어나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의 태도를 누그러뜨리자면 기업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원전이 필요하다. 화력발전소가 뿜어내는 온실가스를 많이 줄여주면 그만큼 기업 부담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상원에 계류 중인 법안은 미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2050년까지 80% 줄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자면 앞으로 40년 동안 180기의 새 원자로 건설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원전 건설 지지자인 알렉산더 라마(공화·테네시주) 상원의원 은 “대통령의 태도가 진화하고 있다”며 “지난달 27일 국정 연설은 오바마 대통령이 원자력 에너지에 대해 행한 연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원전 건설 카드를 꺼낸 오바마의 승부수가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오바마의 입장 변화가 원전 건설에 찬성하는 공화당 일부 의원의 지지를 이끌어낼지는 몰라도 민주당 진보파와 환경보호주의자로부터는 거센 반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미 의회가 승인한 185억 달러의 원전 건설 보증용 예산은 곧 배정될 것으로 보여 미국 원전시장은 한국을 비롯한 프랑스·일본 등의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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