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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민주주의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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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인문·사회·자연 과학 등 학술의 세계는 별의별 ‘효과’의 존재를 다 밝혀낸다.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나비효과(butterfly effect)·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 등. 그런데 ‘민주주의 효과’라는 것은 없다.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드러나야 ‘효과’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터인데, 민주주의가 경제·사회·문화 등의 영역에 미치는 효과는 애매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간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크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돕는다’는 견해와 ‘저해한다’는 견해가 다 있다. 또 한쪽으로 결론을 몰아가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인 로버트 바로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간의 상관관계가 낮다는 점을 밝혀냈다. 민주체제건 독재체제건 체제와 상관없이 경제가 빨리 성장하기도 더디게 성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에 대한 개념 정의를 다르게 설정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연구 결과들이 통계 처리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100여 개가 넘는 국가를 대상으로 한 통계는 참고만 될 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민주적 절차에 의한 문민정부 출범, 첫 번째 여야 간 정권교체, 두 번째 여야 간 정권교체에 걸었던 기대는 컸다. 그러나 ‘즉시발복(卽時發福)’은 없었다. 실망한 나머지 “비민주시대가 더 좋았다”는 말이 포장마차, 택시 안, 댓글 난에서 들린다. 민주화, 민주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표출되기도 한다. 삼청교육대 같은 것을 만들어 다 쓸어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

20세기에만 영국은 14번, 미국은 9번 여야 간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그러나 한국은 두 차례뿐이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운영하기 가장 어려운 정치 형태이며 인간 경험의 최종적 만개(滿開)를 상징한다.” 한국 민주주의에는 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회의론’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퍼지기 전에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은 칠레·대만 등과 더불어 권위주의가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권위주의와 초고속 경제성장과의 연결고리는 이미 단절됐다. 칠레와 대만도 결국 민주주의의 길을 갔다. 되돌아갈 수 없다.

기왕 민주주의를 하려면 ‘권위주의 초고성장 시대’에서 권위주의를 유산으로 갖고 나갈 수는 없다. 하지만 ‘강한 국가와 정부’의 전통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 학계에서는 한국의 고속 성장이 권위주의라기보다는 강한 국가·정부 덕에 가능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시대에는 민주주의 자체가 국가와 정부를 강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창조적 파괴’에 의한 창의성의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다. 민주주의 자체가 창조적 파괴의 대상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말했다. “민주주의는 정지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이다.” 민주주의 행진에 한국은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최단 시일에 달성한 한국은 ‘민주주의가 제2의 경제 도약’을 가능케 한다는 ‘민주주의 효과’를 입증할 잠재력이 있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