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이야기] 지단, 로마 백인대장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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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로마인 이야기' 로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축구광이다.

"이탈리아에 30년 넘게 살면서 축구를 모를 수는 없지요" 라며 겸손해 하지만 해박한 유럽역사 지식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유럽축구 이야기는 독특하고 재미있다.

일본의 스포츠 잡지 '넘버 플러스' 9월호에 실린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 '빗장 수비' 이탈리아의 성공과 좌절

수비 굳히기를 잘하느니 어쩌느니 하며 과거 성공 체험에 머물러 있다가는 이탈리아는 언제까지 가도 이기지 못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카이사르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승리의 여신은 싸움터에서 주도권을 쥔 편이다.

올 유럽선수권 결승에서 이탈리아가 프랑스에 대역전패한 이유는 99% 승리를 수중에 넣었을 때 이를 지켜낼 두둑한 배짱의 베테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단-역사를 바꾼 영웅

이탈리아의 델 피에로와 프랑스의 지단이 팀을 바꿔 뛰었다면 유럽선수권 우승팀도 바뀌었을 것이다.

큰 경기일수록 배짱이 돋보이는 지단은 고대 로마의 장군이었다면 최선봉 백인대장(百人隊長)에 임명됐을 것이다. 머리가 벗겨진 것과 상관없이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독일.잉글랜드는 고집 버려야

적이 예측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유럽선수권을 통해 독일은 절감했다. 규율.책임감 등 전통적 덕목에 이탈리아 축구의 진수인 '판타지아' (상상력)를 가미한다면 독일 축구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잉글랜드의 오언은 아직 귀여울 뿐이고, 베컴도 굉장하다는 느낌은 못 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를 통해 잉글랜드 축구도 변해야 한다. 순혈주의(純血主義)는 예나 지금이나 국제 경쟁력의 최대 적이다.

▶좋아하는 선수는 보반과 바티스투타

보반(AC 밀란)의 플레이는 얼마나 고상한지 숨을 죽일 정도다. 그의 롱슛이나 코너킥은 다도(茶道)의 예법처럼 우아하면서도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바티스투타(AS 로마)는 한마디로 섹시하다. 카메라맨으로 분장해서라도 골 바로 뒤에서 그의 슈팅 모습을 보고 싶을 정도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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