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딩 스쿨의 윤리교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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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미국의 보딩 스쿨(Boarding School), 중·고교 과정의 사립 기숙학교다. 1년 학비로 수천만원이 들어간다.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는 선택받은 소수만이 입학 가능하다. 뉴욕주 트로이시에 있는 엠마 윌러드 스쿨(Emma Willard School). 미국 동부의 명문 여학생 보딩 스쿨이다.

이곳 학생들은 매 학기, 매 과목마다 윤리 교육을 받는다. 별도의 과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과목의 과제물을 낼 때 반드시 주나 참고문헌을 달아야 한다. 한두 쪽짜리 과제물도 예외는 아니다. 학기 초에 윤리 강좌를 별도로 하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다른 책이나 논문 내용을 주를 달지 않고 인용하면 부정행위다. 남의 숙제를 베끼는 것도 부정행위다. 참고서를 보고 숙제를 한 것도 부정행위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차용해도 마찬가지다. 부정행위가 적발되는 것은 곧 퇴학을 의미한다. 이런 얘기를 들려준 이 학교의 한국인 졸업생은 그가 학교에 다녔던 1990년대 중반에 이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은 더 엄격해졌을 것이란 예상도 붙였다. 학교에 따라서는 횟수에 따라 경고와 정학, 퇴학을 정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보딩 스쿨에서 외국학생들은 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이들 중 영어가 달리는 학생은 별도의 수업(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을 받는다. 이 수업에서는 특히 표절에 대한 내용을 강조한다. 이런 학생이 표절이나 부정행위를 가볍게 생각할 것이란 생각이 깔려 있다. 요즘엔 특히 한국 학생을 경계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부정행위로 퇴학당한 학생이 있다는 얘기도 솔솔 나온다.

억울하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지난 24일 학원 강사가 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 문제지를 빼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국내에서는 1년에 1000명 정도가 이 시험을 본다고 한다. 응시생이 적은 만큼 빼돌린 문제를 본 학생이 있다면 그 비율은 매우 커진다. 국내 응시생 성적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더욱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매년 반복되다시피 한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광진구의 한 외국인 학교에서 대학생 2명이 가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대고 SAT에 응시, 시험지를 가지고 달아났다가 잡혔다.

2007년에는 학원으로 문제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채점을 담당하는 미국 교육평가원(ETS)은 그때 한국에서 SAT를 치른 900여 명의 성적을 무효로 했다. 2006년 6월에는 한영외고에서 SAT 사전 문제 유출 의혹이 일었다. 시험 일주일 전 학교에 도착해 보관하고 있던 문제를 연습 문제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ETS는 미국에서 조사단을 한국에 보내 고사장 자격을 취소했다.

정부는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자를 처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해 왔다. 이번 SAT 문제 유출 사건도 다르지 않다. 해당 학원을 일정 기간 문 닫게 했다. 문제를 직접 빼돌리거나 거기에 가담한 사람을 형사처벌한다. 그걸로 끝이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국격을 실추시켰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는 국격이 높아질 수 있을까.

방법을 바꿔야 한다. 미국의 보딩 스쿨 방식을 채택해 보면 어떨까. 부정행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학생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부터 정직해져야 한다. 교육정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과학기술부에 윤리 교육을 강화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부정행위를 한 학원 강사는 3~5년간 퇴출하고 강사 윤리 강령을 만드는 일이다. 학생 한 사람이 월 150만원, 속성은 3주에 1000만원을 낸다고 한다. 퇴출이나 윤리강령만으로 학원들이 엄청난 소득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다. 길고 멀게 보고 끊임없이 학생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정도다. 혹시 교과부에서 정운찬 총리나 안병만 장관을 의식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두 사람은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정진곤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도 논문 표절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교육계 어른들이 이런데 학생들에게 영이 설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송상훈 사회 에디터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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