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용산’ 화해 … 이젠 사회가 손잡을 차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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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월 30일자 1, 2면> 지난해 2월 2일 본지가 “이제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고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56)씨의 메시지를 전한 지 거의 1년 만이다.

사실 이들은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 김권찬씨는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분들은 얼마나 힘들겠냐”며 다른 유족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순천향병원의 철거민 분향소를 남몰래 다녀왔을 뿐이다. 올 초 치러진 철거민 장례식도 주변을 서성이다 결국 들어서지 못했다. 김씨는 기자에게 “가고 싶지만, (유족과) 같이 계시는 분들이 경찰을 너무 미워하시는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철거민 측 한 유족도 이날 김씨에게 “아드님이 미운 건 아닌데, 경찰 가족과 만난다는 게 참 …”이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갈등의 골은 가슴속 응어리만큼 깊었다.

깊은 갈등은 지난달 30일자 기사에 달린 댓글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네티즌도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를 비난했다. “순직 경찰 가족과 폭도 가족이 화해라니” “용산 참사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 때문에 일어난 것이니 책임지라”는 식이다. 한결같이 “그쪽이 지은 죄가 얼만데, 어떻게 화해를 하느냐”는 논리였다.

자기 입장만 보면 상대방이 죄인이다. 용산 참사는 더욱 그렇다. 화염병 농성과 무리한 진압. 무엇이 더 나빴다고 누가 가려줄 것인가. ‘저 사람이 보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이미 1년 전 김권찬씨는 그것을 알았다. 자식을 잃은 고통 속에서 “잘잘못을 따져 무엇 하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만 해 달라”고 말했다. 다행히 이 참사로 인해 우리 사회는 조금 성숙했다. 지난해 재개발지역 세입자들에게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재개발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배려하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용산 참사로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은 유가족이다. 이들이 손을 잡았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냐”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이제는 우리 사회가 손을 잡을 차례다.

임미진 디지털뉴스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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