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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나진 철도 연결 합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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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연결하려면 나진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따라서 북한과 러시아가 나진 철도의 현대화를 통해 TSR을 연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TKR~TSR 연결사업을 남.북.러시아가 공동으로 추진키로 했으나 남한이 배제된 채 북.러가 먼저 착수했다는 점이다.

◆합의 배경은 뭔가=북한과 러시아가 합의를 서두른 것은 무엇보다 경제적 실리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TSR을 통해 국제 물류수송 기능을 담당하면 2011년 연간 수입만 1억5000만~1억8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러시아는 2억5000만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러시아로선 상대적으로 낙후한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TSR을 한반도로 연결하는 일이 절실하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남북한의 협상 결과에만 마냥 매달릴 수 없는 실정이다. 이미 러시아는 TSR 전철화 사업을 완료하고, 100여명의 극동철도(FER) 전문가가 지난해 10월 23일부터 37일간 북.러 접경지역인 하산역에서 북한 나진항까지 56㎞ 구간에 대한 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입장에선 나진항도 탐났다. 현재 러시아 극동지역의 물동량을 소화하고 있는 보스토치니항은 이미 포화상태다. 따라서 시설이 비교적 괜찮은 나진항은 물동량 분산을 위해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나진항에는 선박 접안지역까지 철로가 깔려 있는 데다 나진에서 TSR로 이어지는 철도는 러시아와 같은 광궤(폭넓은 레일)다. 새로 철로를 깔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1960년대 나진에 건설해 준 정유화학공장의 재가동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동지역에 정유공장이 적은 러시아가 나진의 공장을 현대화해 활용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러시아~한반도 가스전 연결사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이에 대한 정부의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북한은 경제특구로 외국에 개방된 나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TSR을 연결해 외국의 물동량을 소화하더라도 주민들이 외부 세계에 노출될 위험이 작다는 얘기다. 또 나진.선봉지역 개발사업에 국제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다.

북한 경제 활성화에 중국의 도움을 유도할 수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북한 진출 경쟁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나진과 중국 횡단철도(TCR) 연결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돈을 들여 이 철도를 연결해 주더라도 향후 이익이 된다"는 보고서까지 내놓았다.

◆향후 전망=안병민 교통개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전격적으로 의정서를 교환하면서 TKR~TSR 연결사업의 주요 당사자인 한국에 그 내용을 통보하지도 않은 것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초 한국을 방문한 레비틴 러시아 교통장관도 북.러 합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2차 철도회의를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열도록 노력하겠다고만 했다. 이를 근거로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5일 국감에서 "10월 말께 2차 회의를 열어 철도 연결사업을 논의할 것이며 회의가 거듭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은 편이다. 남한은 경의선과 TSR의 연결을, 북한은 동해선과 TSR의 연결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경의선과 TSR을 연결하려면 노후한 북한 철도에 대한 실태조사가 급선무다. 이 경우 북한의 실상이 낱낱이 공개될 수도 있는데 북한이 응할지 미지수다. 동해선을 연결하면 금강산에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국제자본을 끌어들여 관광 인프라 확충을 꾀할 수도 있다. 반면 우리로선 동해선을 연결하려면 새로 철도를 깔아야 해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안 실장은 "북한이 당장의 이익을 외면한 채 한국과 경의선 또는 경원선 연결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경의선 등 TKR 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에 넘어갈 공산이 크고 이 경우 TKR~TSR 연결사업도 지지부진할 우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한국외국어대 권원순 교수는 "현재 전문기관 간 회의에 머물고 있는 남.북.러 철도회의를 장관급 회담으로 격상시켜야 가스관 연결사업 등 철도 연결로 파생되는 각종 사업의 관련 부처 간 협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 TKR-TSR 연결사업 추진 일지

▶2001년 8월=푸틴.김정일, 철도수송로 창설 계획 담은 공동선언문 발표

▶2002년 9월=김대중 대통령, '철의 실크로드 사업' 제안

▶2002년 12월=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전철화 완료

▶2003년 10월=노무현.푸틴 대통령, 한반도 종단철도(TKR)~TSR 실무회의 열기로 합의

▶2004년 4월=남.북.러 제1차 철도회의(모스크바), 성과없이 끝남. 8월 말 또는 9월 초에 2차회의 열기로 합의

▶6월=박정성 북한 철도청 대외철도협조국장, "유라시아 철도, 북남 철도 연결부터"주장

▶7월=북.러 철도회의, 나진~TSR 연결 전격 합의

▶8월=2차 철도회의 러시아 측의 거부로 무산

▶9월=노무현 대통령.푸틴 대통령, 'TKR~TSR 연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문에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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