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닷컴 땡시장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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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일 오후 서울 테헤란밸리의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 사무실.

"콘텐츠가 좋아 시너지효과가 클 겁니다. 회사를 인수해 주시죠. " (A사 사장)

"한번 검토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李사장)

한 닷컴기업 사장의 제의를 겨우 거절한 李사장은 "이런 제의가 1주일에 10여건씩 온다" 며 "이중엔 코스닥 등록업체나 외국업체도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상반기만 해도 기업 인수.합병(M&A)을 제의하는 코스닥 기업은 거의 없었는데 지난달부터 크게 늘고 있다" 고 덧붙였다.

서울 역삼역 인근의 인터넷 업체인 B사의 온라인 게시판에는 "투자유치가 전혀 들어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회사 문을 닫게 됐습니다. 일단 대기업이나 다른 벤처에 회사를 인수해 달라고 제의해 놓았지만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일자리는 제가 적극 알아보겠습니다" 라는 글이 올라 있다.

이 회사 C사장은 "투자자의 지원을 믿고 사업을 벌여놓았는데 최근 지원약속이 성사되지 않아 문을 닫게 됐다" 면서 고개를 떨궜다.

올해초 대기업을 박차고 '대박' 꿈을 안고 이곳에 왔던 李모(30)씨는 "예전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며 허탈해 했다.

그동안 우려했던 '닷컴 땡 시장' 이 시작됐다. 자금난으로 닷컴기업이 잇따라 M&A 매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주는 업체는 거의 없다.

'정현준 게이트' 등으로 닷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헐값에 내놓은 회사도 사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실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최근 조사결과 상당수 기업이 M&A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가 닷컴기업 임원급 이상 경영진 1백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을 팔 생각이 있다' 고 응답한 기업이 35%에 달했다.

이중 78%는 M&A가 되면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겠다' 고 밝혔다. '오프라인 기업과의 M&A를 생각하겠다' 고 응답한 기업도 83%나 됐다.

문제는 '다른 기업을 사겠다' 는 기업이 거의 없어 M&A시장이 심각한 수급 불균형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인터넷기업협회의 신재정 사무국장은 "자금시장이 극심하게 위축된 상태에서 정현준 게이트.경제불안 등이 가중돼 회사를 팔겠다는 기업은 많지만 사려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부터 우후죽순처럼 나온 인터넷 쇼핑몰은 특히 문제로 지적된다.

삼성몰.롯데닷컴.e현대백화점.신세계사이버몰 등 대형 쇼핑몰들은 지난달부터 매달 수십여 군소 쇼핑몰로부터 인수제의를 받고 있다.

롯데닷컴의 경우 코스닥 상장사인 D사의 쇼핑몰 부문과 제3시장 등록업체인 C사 등 중소 업체 30여곳에서 '회사를 사달라' 는 연락을 받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서류심사를 해보니 알짜 회사가 3개 정도 있지만 벤처시장의 어려움이 계속될 것 같아 가격이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고 말했다.

프리챌의 전제완 사장은 "상반기에 M&A을 의뢰하는 업체가 한달에 10여개에 불과했지만 요즘엔 40~50개로 늘었다" 고 말했다.

이렇게 M&A시장이 경색되자 닷컴기업의 소액주주들이 회사 경영진 몰래 자금력 있는 기업에 적대적 M&A를 의뢰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라이코스코리아의 가종현 사장은 "최근 많은 업체가 M&A를 의뢰하고 있지만 이중엔 대주주가 아닌 소액주주들이 M&A를 제의하는 경우도 많다" 면서 "이들은 '몇몇 주주의 지분을 합치면 그 회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할 수 있다' 고 은밀히 제의해 오기도 한다" 고 말했다.

한상기 벤처포트 사장은 "최근 설문조사에서 M&A 장애요인으로 응답기업의 34%가 부정확한 기업가치 평가를 꼽았다" 면서 "머니게임이 아니라 닷컴기업에 대한 진정한 가치평가와 자금조달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국내 인터넷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 고 말했다.

김창규.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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