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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신도시 개발 한국업체 참여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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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左)이 10일 주석궁 대접견실에서 르엉 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양국 정상 뒤로 베트남 인민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 전 국가주석의 동상이 보인다. 하노이=최정동 기자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쩐 득 르엉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경제.통상 협력을 비롯한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확대.심화시키기로 하는 5개 항 공동 언론 발표문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하노이 신도시 개발 사업'에 우리 업체들이 참여하도록 합의했으며, 르엉 주석은 "한국의 참여가 계속 잘 되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하노이 신도시 개발 사업은 그간 한국 기업 컨소시엄이 7억3000만달러 규모로 참여키로 했으나 지연돼 왔다. 이번 정상 간 합의를 계기로 내년 초 건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두 정상은 또 그동안 베트남 정부가 불허했던 이동통신 서비스 분야에서 한국 기업 컨소시엄이 합작 투자 형식을 통해 현지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두 정상은 11-2 가스전 등 베트남의 유전.가스전 개발과 각종 인프라 건설에 대한 한국 측 참여를 본격화하기로 했으며 베트남에 한국기업 전용 공단을 조성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6자회담이 성공하려면 북한의 결단이 필요하고 개혁.개방에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북한을 설득하는 등 베트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르엉 주석은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노이=최훈 기자

[뉴스 분석]

"과거보다 미래.경제"
한국 대통령 맞은 베트남의 '과거사'

노무현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중 눈여겨볼 대목은 한국의 참전 등 양국 과거사 언급 문제였다. 노 대통령은 9일 호치민 묘소를 찾아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리본이 달린 헌화를 했다.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호치민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앞을 찾아 10초 동안 묵념도 했다. 관리소장에게 "아주 검소하게 사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진 쩐 득 르엉 주석과의 정상 회담 직전 노 대통령은 "베트남이 오랜 역사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고 이를 극복해 온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며 "양국이 동질성을 지녔고 상호 존경의 감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며 "그만큼 우리 국민은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원론적 언급만을 했다. 이게 전부였고 노 대통령의 이어진 총리.공산당 서기장 면담에서도 더 이상 과거사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바로 베트남이 "과거를 덮고 미래로 향해 나가자"는 노선을 택한 때문이다. 하노이 전쟁 박물관에 있던 부정적 이미지의 한국군 관련 전시물은 오래 전에 치워졌다고 한다.

프레스센터 지원차 나온 하노이 국립대 출신의 도 티 히엔 양은 설명했다. "한국군이 주둔했던 다낭.호이안.냐짱 등 중부 지역에는 한국에 대한 미움이 적지 않다. 아들.남편이 전선에서 죽었는데…. 그러나 과거일 뿐이다."

수교 당시인 1992년. 한승주 외무부 장관은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고 처음 언급했었다. 의사 타진이었다. 전투의 상흔으로 애꾸눈을 한 당시 레 둑 안 국가 주석은 "과거는 잊자"고 했다. 75년 공산화 후 10년을 허송한 베트남 정부는 남부 베트남의 중앙은행 총재.경제부총리를 지낸 구엔 수안 오엔을 당 서기장 자문역에 등용했었다. 그는 역시 남부 사이공 출생인 응웬 번 링 서기장과 호흡을 맞춰 86년의 도이모이(개혁) 정책을 창안했다. 성분보다 시장의 노하우를 아는 인물이 시급했던 때문이다. 하노이를 찾은 조원일 전 베트남대사의 회고도 흥미롭다. "월맹의 게릴라 부대장을 지낸 한 베트남 시장과 투자처를 찾는 우리 기업인들의 골프를 주선했었다. 우리 기업인이 경기 보조원들에게 '야 베트콩들'이라고 부르더라. 등골이 오싹했다. 그 시장은 내색을 않고 끝까지 환대하더라."

쩐 득 르엉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우리가 수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니 우리 물건도 좀 많이 사달라"고 요청하며 미래를 향한 동반 관계 강화를 거듭 역설했다. 한때 우리 군과 총부리를 겨눴던 베트남 인민군의 9일자 군보에까지 노 대통령의 얼굴 컬러사진이 1면 첫 머리에 실려 있었다.

'미래와 경제'. 과거사 정리의 확고한 두 기준을 지켜가는 베트남의 모습이었다. 과거사 정리로 혼돈스러운 우리로선 곱씹어 볼 대목이다.

최훈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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