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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6. 도쿄 오페라시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1997년 10월 10일 단이쿠마(團伊玖磨)의 오페라 '다케루' 를 초연하면서 문을 연 도쿄(東京)신국립극장(新國立劇場)은 일본 최초의 오페라.발레 전용극장이다.

일본 문화성이 제2국립극장 설립준비협의회를 가동한 것은 지난 1972년. 66년에 문을 연 '국립극장' 은 가부키 등 전통예술 전용극장으로 설계돼 오페라 무대로는 도쿄문화예술회관이나 NHK홀 등 다목적 공연장이 주로 쓰였다.

일본 문화성이 통산성 산하 도쿄공업시험장이 있던 하츠다이(初台)를 신국립극장 신축부지로 결정한 것은 1980년. 여론 수렴과 설계 과정을 거쳐 92년에 착공했다. 계획에서 준공까지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설계 공모 당시 일부 심사위원들이 극장 못지 않게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역설, 콘서트홀.상가.사무실.레스토랑이 입주하는 고층빌딩 '도쿄 오페라시티' 가 함께 들어서게됐다.

도쿄 오페라시티는 민간기업이 입주해 운영하고 있는 54층짜리 빌딩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신국립극장까지 포함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국립극장 건설은 정부가 주도했으나 운영권은 민간에 이양했다. 최근 고타로 히구치 아사히맥주 회장이 신국립극장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신국립극장에는 오페라.발레전용극장(1천8백석)외에 뮤지컬.연극 전용극장(1천38석), 13개의 영화관이 들어서 있다.

오페라 극장의 잔향시간은 1.5초. 객석과 무대 사이를 30m 이내로 좁혀 설계해 시야가 넓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1백20명의 연주자를 수용할 수 있다.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은 97년 9월 10일 오자와 세이지 지휘의 사이토 키넨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으로 개관했다.

초대 예술감독을 지낸 작곡가 다케미추 도루(武滿徹.1930~96)를 추모하는 뜻에서 최근 '다케미추 메모리얼홀' 로 명명됐다.

콘서트홀.리사이틀홀.전시실의 운영을 맡은 것은 빌딩 공간의 10% 이상을 문화시설에 할애한다는 조건으로 니혼세이메이(日本生命).NTT도시개발 등 6개 회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문화재단이다.

다케미추가 내건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의 슬로건은 '기도(祈禱)' '평화' '희망' . 세계 정상급 연주자의 수준급 음악, 그중에서도 현대음악을 주로 연주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일본에서 공연장 실내장식을 나무로 통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진으로 인한 화재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국 출신의 레오 베라네크가 음향 자문을 맡은 오페라시티 콘서트홀(1천6백32석)은 무대와 벽면은 물론 의자와 객석 바닥까지 목재로 마감돼 홀 전체가 거대한 현악기처럼 공명이 뛰어나다.

잔향시간은 1.95초. 모델로 삼은 빈 무지크페어라인잘의 사각형 구조에다 높이 27m의 피라미드형 천정을 가미해 구두닦이 상자 모양으로 설계됐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한 피라미드형 콘서트홀은 음악사상 유래가 없는 것이다. 개관 직후 뉴욕타임스가 과학면에서 크게 보도하는 등 세계 건축음향 전문가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됐다.

도쿄오페라시티의 이념은 '21세기형 극장도시' . 즉 예술문화시설.상업시설.업무시설 등 3개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공연예술센터라는 뜻이다.

문화시설을 방문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식사하는 사람, 비즈니스를 위해 오가는 사람 등 모든 방문객이 관객이며 연기자인 '도시' 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가 만나고 새로운 드라마가 태어나는 곳이다. 따라서 모든 시설이 넓은 의미에서 문화시설이라 해도 무방하다.

'BTAT' (Before Theatre, After Theatre)는 도쿄오페라시티 프로젝트 설계팀이 고안한 캐치프레이즈다.

공연 전후의 시간대를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옛날에는 가부키 공연 후 돌아가는 길에 맥주나 술을 즐기는 것이 습관처럼 정착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공연 전후에 즐길 시설이 없었다. 오페라시티에는 연극.콘서트 관람 전후에 전시를 감상하거나 식사.쇼핑을 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타워 동의 전망대 레스토랑이나 스카이바.선쿤가든 등의 레스토랑은 비교적 늦은 시간까지 영업한다.

도쿄오페라시티 문화재단 오노 히로시(小野博)상무이사는 "오페라만으로는 관객 흡인력이 약하다는 정부의 의견도 있어 민간기업이 재단을 설립했다" 고 설명한다.

또 "일류 지휘자가 연주한다고 해서 표가 잘 팔리던 시대는 지났다" 며 "젊은 음악가 발굴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획을 마련하고 싶다" 고 말했다.

도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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