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 한국경제 진단의 열쇠 ‘재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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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벌사
이한구 지음, 대명출판사, 794쪽, 2만5000원

재벌을 보면 한국경제가 보인다. 해방 이후 한국경제의 변천은 재벌의 60년사와 궤를 같이 한다. 정부가 수출입국을 지향하면 재벌은 종합상사를 설립했고, 중화학공업정책을 펴면 기계와 엔진,조선업 등에 진출했다. 수많은 재벌이 태어나고, 각 재벌의 규모가 커지면서 나라경제는 그만큼 살이 쪘다.

그런 가운데 한국경제의 모순도 커져갔다. 재벌부문의 비정상적인 성장으로 정경유착과 경제력집중 등의 문제점이 쌓여간 것이다. 외환위기의 주범(?)이 재벌이란 주장이 논리적 타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설득력을 얻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늘날의 한국경제 위기도 재벌의 위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요즘 한국경제의 핵심 문제는 투자 부진이다. 이렇게 된 것은 외자에 대한 경영권 방어와 미래불확실성의 증대 등 위기를 맞은 재벌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한구 교수(수원대)의 『한국재벌사』가 지닌 장점은 그동안 명멸해온 수많은 개별 재벌의 성장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대표적인 재벌이었지만 망했거나 중소기업으로 전락한 태창·율산·국제·대농 등의 흥망사가 자세히 소개된다.

최근 쓰러진 대우와 쪼개진 현대그룹의 사례도 들어 있다. 이 책은 또 이 같은 재벌의 흥망이 경제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실증해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제정책 60년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DJ정부 아래 각종 재벌 규제와 투명성 조치들이 재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설명돼있다.

이 책의 한계는 지금의 재벌체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술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수십년에 걸쳐 끈질기게 재벌 자료를 수집한 이 교수의 정성만으로도 일독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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