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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세계는 지금 교양을 읽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독일에선

식을 줄 모르는 ‘슈바니츠 물결’

자연과학 중요성 강조
피셔의 『또 다른 교양』
초대형 베스트셀러에

“이제는 교양(Bildung)이다.”

▶ 내년도 주빈국이어서 그런지 올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는 한국관을 찾는 관람객이 많다. 올해 세계 출판계의 흐름을 말해주는 키워드는 ‘교양’이다.

6일 세계 110여개국 출판인들이 모인 가운데 개막한 제56회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는 교양 서적에 대한 열기가 후끈했다. 국내에도 소개돼 베스트셀러가 된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후폭풍이 여전히 독일 서점가는 물론이고 세계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슈바니츠 물결(Welle)’로 불리는 교양서적 붐에 편승한 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심지어 출간된 지 몇년 지난 책까지 뒤늦게 각광을 받고 있다.

슈바니츠 못지 않게 주목을 받고 있는 독일의 교양작가는 과학자 출신의 에른스트 페터 피셔(57)교수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교수자격시험을 과학사로 통과한 다채로운 경력을 자랑한다. 현재 독일 남부 콘스탄츠대학과 스위스 바젤에서 학문과 지식의 역사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으며 지난 몇년 간 집필활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다.

현재 서점에 깔려 있는 그의 저서는 무려 25권. 대다수가 자연과학과 관련된 교양지식 책이지만 『이미지와 이미지네이션: 매혹연구』와 『상식 비판』 『시장을 위한 학문』등에서 그는 해박한 인문학 지식을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란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피셔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은 슈바니츠의 히트작인 『교양』과 유사한 제목인 『또 다른 교양(Die Andere Bildung)』이다. 아마도 이 책을 기획한 울슈타인 출판사는 1999년 첫 출간돼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슈바니츠의 『교양』의 후광을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셔의 『또 다른 교양』은 슈바니츠 못지않게 교양과 재미를 듬뿍 실은 역작이다. 저자는 슈바니츠가 사람이 알아야 할 교양에 자연과학을 빠뜨려 놓은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오늘날 자연과학적 지식과 교양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각자의 일과 관련해서는 물론이고 건강· 음식과 환경 문제 등 모두가 자연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양인이라고 자처하는 지식인조차도 정작 자연과학적인 기본 토대에 대해 아는 바가 적다고 피셔는 목소리를 높인다.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독자들이 알아야 할 지식을 전하면서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우리시대 문제까지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저자가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자연과학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단지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서비스 영업차원’의 학문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피셔는 최근 『이중 나선형구조의 시작에서』(울슈타인 출판사), 『코스모스로의 가교』(리벨레 출판사), 『부분이 없는 세계』(아르햐에아 출판사)등 역작을 잇따라 내놓았다.

소장 여류작가인 크리스티안네 츠슈른트(39) 역시 대표적인 교양작가로 손꼽힌다. 영문학을 전공한 후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최근 교양서적붐이 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대표작은 『책들(B웒her):사람이 읽어야만 하는 모든 것』. 교양인으로서 읽어야 할 필독서에 관해 그는 마치 친절한 도서관 사서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 서양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성경에서 마키아벨리·마르크스 등 사상가, 프랑스 희극작가 몰리에르, 독일의 대표작가 토마스 만, 『해리포터』시리즈를 쓴 영국 작가 조앤 롤링에 이르기까지 필수 교양서적의 내용과 그 의미, 왜 이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츠슈른트는 “오늘날 마케팅과 유전자 조작 옥수수, 웹디자인을 아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모르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독자들을 인류 문명의 역사로 끌어들인다.

‘사랑’ ‘정치’‘섹스’‘유토피아’등 다루는 주제도 다채롭다. 술술 읽히는 평이하고 재기 발랄한 문체가 돋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주제와 그와 관련된 책들을 한 권에 담아 소개한다는 과욕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거대 담론에 주눅 들어 감히 잡을 엄두도 못 내는 불후의 고전들에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침반의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밖에 독일 대형서점인 두스만, 후겐두벨 등에서는 이전에 출판된 슈바니츠의 『유럽의 역사』『남자들』『캠퍼스』등이 서가에 꽂아둬야 할 책들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고, 슈바니츠의 아류라 할 수 있는 『학문의 일곱가지 최대 수수께끼와 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다비드·아놀트 브로디 지음),『도서관』(카를 프루이스 지음),『삶,자연, 학문』(데틀레프 간텐 지음)등도 쏠쏠하게 팔려나가고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한국에선

“의사소통 막는 것은 결국 교양의 부족”

얄팍한 지식만 좇고 교양 쌓기엔 소홀 세대간 ‘갈등의 골’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들녘)은 출판사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35만권이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제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를 기세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다 알아야 한다, 혹은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을 모두 담았다고 주장하는 책 제목이니 대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교양 내용을 정리한 1부 ‘지식’이 아니라 슈바니츠가 나름의 교양론을 펼치는 2부 ‘능력’이다. 지식 그 자체보다는 지식을 습득, 평가, 정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슈바니츠에 따르면 교양이란 ‘인간의 상호 이해를 즐겁게 해 주는 의사소통의 양식’이며 ‘문화 영역의 기본 정보에 대한 통달을 전제로 이것이 유연하게 훈련된 정신상태’다. 요컨대 교양은 잡학의 달인이 박식을 과시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슈바니츠는 모르면 모를수록 교양이 되는 것들로 유럽 왕실의 암투, 텔레비전 프로그램, 여성 잡지 등을 거론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이 세 가지는 다른 사람들과 한가하게 나눌잡담의 소재를 풍부하게 제공하지만, 잡담이 끝나면 도무지 남는 게 없다.

교양을 지식 정보의 집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 소통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슈바니츠의 생각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지식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된 최근 현실을 감안하면 매우 적절하다. 교양은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실현된다. 그렇다면 교양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교양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그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 역시 특유의 교양론을 담고 있는 부분이 백미다.

다치바나는 교양이란 지식 자체와는 구분되며 교양이 완성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말한다. 주의할 것은 그가 문학·사상·역사 등의 고전을 섭렵하는 것이 현대의 교양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현대의 교양이란 무엇인가? 현대의 교양이란 현대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 구체적으로는 스스로 조사하고 정보를 정리하고, 문서를 작성하며, 인터넷을 이용해 발신할 수 있는 능력이며,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놓고 그 거짓과 오류를 발견하며,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팀을 활용해서 작업하는 능력 등이다.

세월을 좀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세기 영국의 교양인이자 외교관, 정치가였던 필립 체스터필드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충고했다. “태도에 따라서 지식이나 식견이 빛나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잡아끄는 것도 지식이나 식견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체스터필드는 책, 특히 젊은 시절에는 역사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책과 학문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사귈 것인지, 즉 인간 관계에 관한 충고를 가장 많이 한다.

독일· 일본· 영국 교양인들의 이러한 의견을 종합한다면, 교양은 책상머리 지식이 아니라 의사 소통의 실천 그 자체다. 교양은 인류가 역사를 통해 쌓아 온 문화를 익히고, 새로운 문화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교양이 없다’는 것은 타인과 공유하는 이해의 지평이 없어 말이 통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 배타적이며, 갖추고 있는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는 걸 뜻한다.

먼 예를 들 것도 없다.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출연자나 네티즌들이 하나의 개념을 놓고 제 나름의 풀이를 고집한다. 말을 교환하는 기본적인 규칙을 도외시하고 나름의 규칙을 내세운다. 합리적 설득의 노력은 보이지 않고 상대를 압박하려는 시도만 보인다. 토론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 결과는 중구난방이며 생산적인 합의나 상호 이해는 멀기만 하다.

그렇다면 교양이란 의사 소통의 실천일 뿐이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정보를 습득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개념, 술어, 지식 등이 없다면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일종의 지식 화폐, 지식 통화가 있어야 지식 교환이 가능하다. 예컨대 초·중등 교육과정은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지식 통화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대학은 전문 분야의 지식 통화를 습득, 운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고 대학원은 새로운 지식 통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사람들이 교환이 불가능한 제 각각의 화폐를 내밀며 상대방에게 거스름돈을 요구한다면? 장기판에서 바둑의 규칙을 고집하는 꼴이 될 것이다. 한 사회에서 세대 갈등을 비롯한 내부 갈등이 심해진다는 건 기본적으로 지식 통화 유통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문화가 아무리 역동적이고 참신해도, 그 새로운 세대가 다른 세대와 공유하는 지식 통화가 없다면 새로운 세대의 문화는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며, 그 세대는 문화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고, 그 사회는 한 세대 혹은 그 이상의 문화적 공백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가치, 다매체, 다문화-실로 다(多)의 시대라 할 우리 시대에 그 다양한 것들이 화이부동(和而不同)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 다양한 ‘코드’가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이해 지평을 마련하는 것. 이러한 필요성에서 교양이 단지 개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와 국가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영어에서 교양(culture)은 라틴어의 ‘경작한 땅’(cultura), 즉 자연 상태 그대로 놓아둔 땅이 아니라 가꾸어 놓은 땅이 그 어원이며, 독일어의 교양(Bildung)은 성장·교육·형성·도야(陶冶) 등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면 『논어』의 ‘옹야(雍也)’장에 나오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이야말로 교양의 본뜻이자 그 이상이 아닐까 한다. 질(質)이 타고난 바 소질대로의 자연스러운 바탕이라면, 문(文)은 인위적으로 세련되게 꾸며나가는 활동 및 그 결과를 뜻한다. 질이 지나치면 거칠고 투박하기만 하며, 문이 지나치면 세련되기는 하나 가식적이기 쉽다. 공자는 그러한 문과 질이 잘 어우러진 다음에야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리더, 곧 군자(君子)가 된다고 보았다. 우리 사회 전체 및 각 부문의 리더십이 없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문과 질이 균형을 이루어 빈빈하지 못하고 각자의 질만 내세워 고집하는 형편, 즉 문의 부족, 교양의 부족이 원인이 아닐까?

교양의 어원이나 뜻에서 볼 수 있듯이 교양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이뤄나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몇 권의 책만으로 교양이 쌓일 리 만무하다. 교양의 기반이 되는 지식 통화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책 몇 권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아쉬운 점을 들자면,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교양에 양(洋)의 동서가 없다고 하더라도 동양의 인문· 예술·과학 전통에 관한 지식 통화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점이다).

『청소년을 위한 교양』(마르팀 침머만 엮음, 박종대 외 옮김, 사계절),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사사키 다케시 외 지음, 윤철규 옮김, 이다미디어), 『책과 세계』(강유원 지음, 살림),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제임스 버크 지음, 장석봉 옮김, 지호),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 외 지음, 휴머니스트),『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김용석 외 엮음, 휴머니스트).

표정훈(번역가)

***일본에선

‘바보의 벽’ 372만부… 최고의 히트상품

의대교수 출신 요로
주요 서점마다
별도 코너 마련

일본에서 현재 최고의 저자로 대우받는 사람은 요로 다케시(養老孟司)다. 지난해 출간된 『바보의 벽』은 372만부가 팔려나가 일본의 최고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주요 서점엔 수십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들을 따로 진열한 코너가 설치돼 있다.

『바보의 벽』은 소통 부재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과 칼 포퍼를 인용하고 모차르트와 피카소의 작품을 논하며 메이저 리그의 일본인 스타 이치로를 분석한다. 저자 요로는 종교학·정신분석학·언어학에 통달한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문장은 현학을 배제하고 있다. 후속작인 『죽음의 벽』은 물론 『신체의 문학사』『새빨간 거짓말』『손질 문화와 일본』등 다른 저작도 학문의 벽을 넘나들며 달필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는 도쿄대에서 30여년간 해부학을 가르친 의대 교수 출신이다. 그의 저서 수십권을 ‘해부’해 보면 전공 분야인 뇌(腦)과학·해부학의 뼈대 위에 과학철학·역사·예술에 사회시평까지 넘나드는 풍부한 ‘교양’이 피와 살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교양 작가를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다.

19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의 금전 스캔들을 파헤쳐 일본 사회를 뒤집어 놓은 스타 기자 출신인 그의 저작들은 장르·분야를 가리지 않고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는 해박함으로 정평이 나 있다. 120권의 저서 목록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일본 공산당 연구』『다나카 마키코 연구』처럼 저널리스트적인 저작도 있고 상대성이론·분자생물학과 우주과학에까지 사유의 범위를 넓히는 『원숭이학의 현재』『정신과 물질』『우주로부터의 귀환』도 보인다.

다치바나의 지식과 왕성한 활동을 떠받치는 원동력은 끊임없는 독서다. 1000 쪽 분량의 사전을 통째로 읽고 뇌사에 관한 책만 500권을 읽었다는 그의 독서편력(『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은 범인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다. 자신을 교양주의자라 부르는 다치바나의 책들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지적 자극을 준다.

일본에는 다치바나와 요로 이외에도 풍부한 교양작가군이 형성돼 있어 이들이 번갈아가며 왕성하게 교양서적들을 쏟아낸다. 청춘소설 작가 출신의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는 종교·민속·예술에 대한 천착을 바탕으로 문명비평론적인 저서를 많이 쓰고 있다. 공학박사 출신의 요시무라 사쿠지(吉村作治)는 이집트 피라미드학을 기반으로 비교문화·고고학·요리·교육학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2006년 완간 예정인 연작 『로마인 이야기』로 국내에도 팬이 많다. 교육학자인 사이토 다카시(齋藤 孝)의 『소리내 읽고 싶은 일본어』나 시나리오 작가 출신 하야시 히데히코(林秀彦)의 『잃어버린 일본어,잃어버린 일본』과 최근작 『일본인이라면 알아야 할 교양어』 등은 일본어란 배를 타고 교양의 바다를 항해하는 작품들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10월 9일자 북리뷰 B2면 '식을 줄 모르는 슈바니츠 물결'기사 중 에른스트 페터 피셔 교수의 저서 '건강한 인간이성에 대한 비판'을 '상식 비판'으로 바로잡습니다. 이 책의 독일어 원제는 'Kritik des gesunden Menschenverstandes'로 기사에서는 원문 그대로 직역했으나 'gesunder Menschenverstand'는 흔히 영어의 커먼 센스(common sense), 즉 '상식'이라는 의미로 쓰여 '상식 비판'으로 옮기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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