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석환 영화 '하면 된다'서 첫 주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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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28일 개봉하는 영화 '하면 된다' (감독 박대영). 제목이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그러나 결론은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다.

쫄딱 망한 일가족이 보험금 사기에 눈을 떠 뭉칫돈을 만지지만 결국 보험금을 둘러싼 상호불신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을 익살맞게 풍자한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끝까지 '하면 된다' 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영화에서 주연으로 나오는 배우 안석환(41)이다.

물론 돈 얘기는 아니다.한번 정한 목표를 향해 '캔 두 스피리트(Can Do Spirit)' 로 밀고 나가면 '쥐 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는 것. 실제 배우로서 그의 인생이 그랬다.

안석환은 '하면 된다' 에서 처음으로 영화 주연을 맡았다.92년 '명자 아끼꼬 쏘냐' 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이래 가장 큰 경사다.

하지만 영화팬이라면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듯. '넘버3' 의 깡패 두목, '세기말' 의 부랑자, '텔미 썸딩' 의 검시관 등. 지금까지 출연한 10여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연으로 자리를 굳혀 왔다.

이번에 그는 코믹연기를 십분 발휘해 보험사기단의 두목격인 가장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트럭 뒤에서 볼 일을 보다 후진하는 차에 치여 생각지도 못한 보험금을 탄 그가 아내.딸.아들, 그리고 나중에 사위까지 끌어들여 벌이는 황당무계한 사기극에 관객들은 폭소를 연발한다.

안석환은 또 28일 함께 선보이는 한국 최초의 소방영화 '싸이렌' 에선 소방대장으로 나온다.각자 상처를 안고 사는 부하 대원들을 자상하게 감싸는 중재자 역할이다.'하면 된다' 의 배꼽 잡는 모습과 정반대다.그만큼 연기폭이 넓다는 증거다.

안석환은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파 연기자다.요즘 영화판에서 인기가 좋은 최민식.송강호.설경구 등이 그의 후배다.

상업고.단국대 경영학과를 나와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 87년 연극판에 뛰어든 이후 숱한 시련을 이겨내며 지금은 한국 연극계를 끌어가는 간판배우로 성장했다.

연극 '남자충동' '고도를 기다리며'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등이 대표작. 17일 개막한 '불꽃의 여자 나혜석' 무대에도 서고 있다.

'하면 된다' 의 소재처럼 그도 그동안 돈이 무척 궁했을 것으로 보였다.

그는 간장에 밥 비벼 1주일 이상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남처럼 밥을 먹기 시작한 때는 94년입니다.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태백산맥' 에 잇따라 캐스팅된 결과지요. 그전엔 1년 수입이 4백만원이 안됐습니다.지금은 그때보다 30배 이상 뛰었으니 성공한 건가요?"

'하면 된다' 의 연기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의 철부지 부랑자 에스트라공과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물었다.

"둘 다 소극(笑劇)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요. 그러나 연극보다 얼굴표정.목소리 등의 표현수위를 낮췄어요. 아무래도 영화는 연극보다 현실성을 강조해야 하거든요. 부담없이 한 편의 만화를 보는 것처럼 저런 바보 같은 인생도 있구나 하고 웃어주었으면 합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건 내꺼다' 하는 자신감이 들었거든요. " 안석환은 자기관리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배우. 후배들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기도 직업인데 하려면 철저해야죠. 지금도 '연기론' 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신발 하나를 보더라도 그 사람의 직업.성품을 상상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보죠. " 사촌형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며 "아! 사람은 이렇게 우는구나" 를 떠올렸다는 부분에선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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