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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전윤호 '내 마음의 종유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너를 만난 뒤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한번씩 헤어질 때마다

똑똑 물방울 떨어지더니

종유석이 자라기 시작했다

네가 아주 떠나간 지금

끝이 뾰족한 거대한 석순들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어느날 바람 불고

네 소식이 들려 오면

내 가슴엔 지진이 일어

종유석들은 비수처럼

아래로 떨어져 박힐 것이다

- 전윤호(36) '내 마음의 종유굴' 중

몇 만년의 시간이 산을 뚫어 길을 만들고 석회암을 녹인 물이 석순으로 자라온 동굴 하나를 몸 속에 감춰두고 있는 시인이 있다.

누군가가 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파고 칼끝같은 석순을 키워주고 있어 거기 지나가는 바람 소리,물소리도 견디기 어렵거늘 어느 날 지진이 일어 종유석들이 비수로 떨어져 박히면 어찌해야 하는가.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는 묘약이 아니라 여기서는 살을 베는 비수가 되고 있구나.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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