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숙 교수, 가야금산조 여섯류 전곡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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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가야금의 명인 이재숙(59.서울대 국악과)교수에게는 '최초' 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다닌다.

서울대 국악과 최초의 가야금 전공 졸업생이자 전임교수, 1964년 국내 최초의 가야금 독주회…. 이교수가 오는 27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50여분 걸리는 최옥산류 가야금 산조 전바탕을 연주한다.

데뷔 독주회 30주년을 맞아 김죽파류 산조를 연주한 이래 6년 만에 산조 여섯 유파 전곡 연주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것이다.물론 '최초' 다.

그는 김죽파류 연주 이후,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나가 있던 96년을 제외하곤 강태홍류.성금련류.김윤덕류.김병호류 등 해마다 한 유파씩 산조를 정리해왔다.

가야금 산조 전바탕 연주는 완창 판소리 못지 않은 고도의 집중력과 테크닉, 깊은 음악성을 요구하는 무대다.

여섯 유파 산조를 완주하는 것은 소리꾼이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 등 판소리 다섯마당을 완창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번에 연주할 최옥산류는 탄탄한 구성미, 또렷한 성음(成音), 절제된 농현(弄絃)으로 남성적인 기품이 깃들여 있다.

가야금 명인 함동정월이 71년 고수 김명환을 만나 최옥산류 산조를 정리할 때 곁에서 4년간 배웠다.

75년 제3회 가야금 독주회에서 짧은 산조로 20여분 연주한 적이 있으나 전곡 연주는 이번이 처음이다.

李교수는 "매년 새로운 산조와 씨름하느라 6년간 여름 휴가도 못 가고 연습에 매진했다" 며 "마지막이라니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고 말했다.

"산조를 공부할 때마다 그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는 그는 "명인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던 만큼 후배들에게 이를 성실하게 전승하는 게 임무" 라고 강조했다.

대학 시절 황병기 교수에게 가야금 풍류와 김윤덕류 산조를 배운 이교수는 이후 홍원기에게 가야금 정악을 익혔고 성금련.김윤덕.김병호.김죽파.김춘지.함동정월.김삼태 등 당대 명인들을 두루 사사했다.

하지만 이교수가 6년 전 여섯유파 전곡 연주에 도전장을 냈을 때 연주를 제대로 해낼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산조는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인 만큼 한번쯤 무대에 올리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모험을 감행했다.

"성금련류는 화려하고 대중적이고 김병호류는 심오한 멋이 있어요. 또 김윤덕류는 '선비산조' 라는 별명처럼 절제된 맛이 일품이지요. 강태홍류는 톡톡 튀는 맛이 제격입니다.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김죽파류예요. 섬세하고 여성적이라 제 성격과도 잘 맞아요. "

'이재숙류' 를 만들어 보라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다.하지만 한 유파에 집중했더라면 떠도는 가락을 삽입할 수도 있었는데, 모두 섭렵하다 보니 오히려 어렵게 됐다.

"가야금산조를 김창조 선생이 처음 만들었을 때는 15분짜리였는데 제자들이 새 가락을 넣어 점점 길어졌어요. 오래 사신 분일수록 산조 가락이 길어요. "

李교수는 정악.산조.창작곡으로 꾸미는 가야금 독주회의 전형을 확립한 인물이다.64년 11월 5일 서울대 음대 국악연주실에서 열린 제1회 이재숙 가야금독주회는 우리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가야금으로 혼자 독주회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옛날 악기로 현대 청중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고 프로그램을 꾸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이제 그에게는 새로운 수식어가 또 붙게 됐다."가야금 여섯유파 전바탕 첫 전곡 연주자" 라는. 02-880-7981.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산조란…>

산조(散調)란 글자 그대로 허튼 가락.허드렛 가락.흩어진 가락을 한데 엮은 것이다.남도 지방의 즉흥적 무속음악인 시나위 가락을 느린 것에서부터 빠른 것으로 옮겨가는 장단에 맞게 재구성해 연주하는 기악 독주곡이다.

연주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즉흥성이 생명. 산조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가야금산조의 시조는 김창조 명인. 장고를 연주하는 고수는 판소리처럼 가끔씩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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